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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워스에 살며 이민자의 풍경을 그리는 소설가가 첫 소설집을 냈다. 소설집의 이름은 [마이 마더스 다이어리]다. 총 9편의 단편을 묶었다. 모두 우리 이야기다. 어쩌다 이민자가 된 우리들의 삶을 드려다 보며 가감 없이 진솔하게 적어나갔다. 이민자의 삶은 독특하다. 자의 반 타의 반 자신의 삶을 옮겨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튼튼한 뿌리를 갖고, 누군가는 뿌리도 못 내리고 생을 한탄하며 마감하는 게 현실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옛날 구석기 시대의 표어가 돼버린 지금 우리는 빵을 찾아 자아를 버린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왔지만, 우리의 일상은 빵을 구하는 현실에 묶여있다.

소설집의 단편 중 백미는 ‘마이 마더스 다이어리’다. 한국의 독자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부분도 있겠지만, 이민자의 정서에서는 아린 상처보다 더 아프게 파고드는 풍경들이다.
“이곳에서 노인들은 하루 종일 죽어가는 연습을 했다.” 는 독백은 소설가의 입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다수가 가게 될 ‘미국의 요양원’. 몸이 불편하고 말은 통하지 않고 대소변도 못 가리는 처지가 되면 삶은 없어지고 오직 본능적인 생만 있는 시점이 된다. 그러나 그 생마저 유기되는 곳이 요양원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풍경을 박혜자 작가는 상상력을 가미하지 않고 경험을 그대로 옮겨적었다. 어머니의 요양원 생활을 그대로 옮겨 적은 풍경이다. 그림은 까만 캔버스에 무심히 찍은 하얀 점 하나뿐이다. 그 하얀 점은 호전되어 두발로 걸어 나올 수 있는 실날같은 희망이지만 확율은 희박하다. 어쩌면 까만 바탕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인간 본성의 민낯인지도 모른다.

이민 30년 차인 박혜자 작가는 텍사스뿐만 아니라 이민자로 살아가는 모든 지역을 대표하는 발군의 소설가다. 그녀가 싫어하는 단어가 ‘재외 작가’지만, 이민자이기에 그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작가라는 뜻도 된다.
작가에게는 이민자라는 단어가 족쇄일 수 없다. 이민자이기에 쓸 수 있는 소재가 무궁무진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 속에 녹아있는 이민자의 삶은 원천이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민자의 삶이 아니고 다른 삶을 그리고 싶다면 더 좋은 오아시스를 찾아 헤메다 모든 것을 소진하는 작가가 될 수 있다. 세상의 이치는 허공에서 점프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라는 땅에서 점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힐링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입양아, 도넛 가게, 세탁소 그리고 밤청소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소수의 삶을 그리지만, 그게 우리가 품고 사는 풍경이기도 하다. 이런 풍경은 아무나 그릴 수 없다. 그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지 않은 사람은 수박 겉 핥기밖에 못한다. 그래서 박혜자 같은 작가가 필요하다. 그런 작가가 그리는 풍경이야말로 이민자들과 새로운 세계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의 희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혜자 작가는 이제 막 말문이 터진 아이처럼 할 얘기와 그릴 풍경이 너무 많다. 그녀의 손끝에서 쓰여질 이민자의 새로운 모습이 궁금해진다. *

사진 글_ 김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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