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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 기자가 보는 세상

얼마전 지인의 어머니 장례식에 다녀왔다. 고인이 자녀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사랑한다”와 “고향에 가고 싶다”였다고 한다.
‘앰뷸런스 소원재단’ (Ambulance Wish Foundation) 이란 곳이 있다. 2007년에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이 재단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거동을 할 수 없는 환자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민간 봉사단체다. 죽기 전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에 데려다주고,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주선해 준다. 이곳에는 365일 24시간 앰뷸런스 6대와 자원봉사자가 대기한다.

매년 2천 건 정도의 소원이 이곳에 접수된다. 지난 11년간 1만 명이 넘는 말기 환자들이 소원을 이뤘다. 이 재단을 만든 이는 20년간 앰뷸런스 운전사로 일한 키스 벨드보어 (Kees Veldboer)란 사람이다. 벨드보어는 아내, 직장 동료와 함께 말기 환자의 소원을 무료로 실현시켜주는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의 취지와 진정성에 지원과 봉사자가 줄을 이었다. 매년 55만불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데 재단 운영은 각지에서 들어오는 기부금으로 해결한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의외로 작고 평범한 바람이었다. 가족과 추억이 있던 장소에 가보기, 폐 질환으로 병원에 있던 아버지가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 돌고래 보기, 손자와 유원지에 놀러가기, 최고의 식당에서 생선요리 먹기, 좋아하는 팀의 축구경기 보기 같은 것이었다.
평생을 로테르담 동물원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죽음을 앞둔 마리오라는 사육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돌보던 동물들을 보고 싶어했다. 그가 침대에 실려 기린 우리 앞에 가자 기린 한 마리가 다가와 작별키스를 하듯 입을 부벼댔다. 감동적인 이 사진은 세계 많은 언론에 실렸고 이 재단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죽음은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인데 나는 왜 죽음에 대한 준비와 공부가 안 됐을까?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인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결국 너도 죽는다’라는 뜻이다. 이 말을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그건 내가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교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다짐이라고 한다.
지난 21일,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가 시신을 퇴비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시신 퇴비화’ 관련 법안에 서명하며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신 퇴비화’가 법적으로 허용됐다.

법이 시행되면 워싱턴주에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은 풀, 나무와 미생물 등을 활용한 30일 간의 재구성(Composition)과정을 거쳐 정원의 화단이나 텃밭에 쓰이는 흙으로 변할 수 있게 된다.
전통적인 시신 장례 절차와는 너무나 다른 이 같은 접근법에 동의하기 힘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당장 종교계 등에서 시신 퇴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주 가톨릭계는 상원에 보낸 서한에서 “유해를 그런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시신에 대해 충분한 존중을 보이지 못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맞닥뜨리게 될 죽음. 그 죽음 이후의 모습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죽음은 결국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삶에 대한 고민도 마땅히 죽음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삶이 있으니 죽음이 있는 게 아니라, 죽음이 있으니 삶이 있는 게 아닌가!

DKnet
최현준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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