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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을 통해서 일하실 때 우리의 내적 음성인 양심을 통해서 일하신다. 사도 바울의 사역을 보면 그가 얼마나 선한 양심을 따라 움직인 사도였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행 23:1)고 간증하였다. 그냥 양심이 아니라 선한 양심(good conscience)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한 것이다.
또한 바울은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5-16) 간증하였다. 사도 바울은 내세와 마지막 심판과 부활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깨끗한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선한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고 권면하였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그같은 사람이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왜 존경받는 유명한 목사님이나 성도가 타락하여 지탄받는 처지에 떨어지고 마는 것일까? 그것은 선한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다가 결국에는 양심에 화인 맞아 믿음까지도 저버리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성령이 밝히 말씀하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2)고 하였다. 성령님께서 주신 착한 양심을 자꾸만 거절하고 거역하게 되면 나중에는 양심에 화인 맞아서, 선한 양심은 마비 상태가 되어서 대신 거짓말과 외식에 빠지게 되고, 믿음에서 떠나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귀신의 가르침을 좇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양심을 선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며 지킬 수 있을까? 첫째로,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의 지속적인 인도자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양심이 가져야 할 변함없는 기준이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북쪽을 가리킬 때 양심은 신뢰할 만한 나침반이다”고 말하였다. 선한 양심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선하신 말씀을 떠나서는 결코 가질 수 없다.

둘째로, 우리는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해야 한다.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을 통해서 교통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의 음성, 곧 양심의 소리에 민감해야 한다. 우리가 성도답게 말하지 않고 행동할 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며 슬퍼하신다(엡 4:29-31). 또한 성령님의 탄식은 곧바로 우리의 영에게 전달되어 그같은 말과 행동을 하지 말도록 우리의 양심을 통해 제동을 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거듭난 선한 양심이 말할 때 우리가 민감하게 듣고 따라가야 한다.

끝으로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갖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는 더러운 양심도 깨끗하게 하시고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선한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더럽고 거짓된 양심으로 살았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탄식하시고 슬퍼하시면서 그때그때 우리의 죄를 지적해주시고 깨우쳐 주실 때, 거절하거나 미루지 말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선한 양심, 깨끗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지각하고 분별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동안 교회 부흥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선한 양심을 저버리고 거짓말과 불의와 불법을 자행했던 우리의 행실을 회개하고 영의 음성, 선한 양심에 귀 기울이고 순종할 때 한국 교회와 성도는 거룩한 교회와 성도다운 성도로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화인 맞은 양심이 아니라, 선한 양심대로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이 정엽 목사 (뉴비전교회 / 214-534-7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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