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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도 목사 성지탐방 기행문(1)

의과 대학에서 단 한번도 인체 해부학 실습을 해 보지 않고 그림이나 사진 만으로 공부한 의대생이 과연 수술을 잘 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나 혹은 목회적 상황 가운데 많은 목회자들이 초대교회가 세워진 성경 속 현장을 밟아보지 못하고 설교와 목회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우스 웨스턴 침례 신학대학원 손상원 신약학 교수와 서른 여섯명의 텍사스 침례교 북부 지방회 목회자 및 사모들이 초대교회 성지 탐방을 나섰다. 필자는 9박 10일간 터키와 그리스의 초대교회의 성스러운 현장을 다녀온 후에 초대교회가 현대교회에게 던지는 메세지를 나누려 한다.
짧은 일정 가운데 많은 성지를 다녔지만 그 중에 필자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곳이 있다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 라는 곳이다. 과연 라오디게아의 초대교회는 이천년 후에 이 땅에 뿌려질 현대 교회들에게 어떠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가?
필자가 속한 성지학습탐방팀은 지난 5월 13일에 휴스턴 죠지 부시 국제공항에 모여 Turkish Airline편으로 이스탄불행 직항을 타게 된다. 빡빡한 목회 일정과 빠듯한 살림살이 중에 어떻게든 시간을 낸 침례교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은 처음 하는 성지탐방이라 그런지 한껏 멋을내고 목소리도 들떠있다. 함께 간식을 나눠 먹으며 못다나눈 목회의 봇다리를 푼다. Turkish Airline에서 나오는 식사도 그럭저럭 먹을만 하다. 터키에 도착한 늦은 밤 짐을 풀고 다음날 아침 일찍 부터 버스를 타고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간다. 셋째날이 되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그리고 피시디아 안디옥을 지나 드디어 세계적인 관광지인 파무칼레에 도착을 하게 된다.
파무칼레라는 이름은 터키 말로 “솜으로 만든 성”이라는 뜻이다. 자그마치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지로 등재된 명소이다. 멀리서 볼때는 눈으로 덮인 작은 언덕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 보면 수천년 동안 땅 아래에서 솟아난 온천수가 흐르는 곳이다. 뜨거운 물에서 칼슘이 녹아 옹고되기를 수천년, 그리고 솜사탕 같은 언덕을 만들어 낸 것이다. 순백의 언덕 곳곳에 온천수가 고인 웅덩이들이 있고 그 웅덩이들 사이로 온천수가 흐른다. 맨발로 들어가 보면 마치 조개껍데기를 밟는 듯한 따가움이 느껴 지지만 데이지 않을 만큼 적당히 뜨거운 물이 발복을 적시고 중국전통 발맛사지를 받는 기분도 든다. 솜사탕 언덕 아래를 내려다 보면 커다란 에메랄드 빛 호수가 보이고 당장이라도 뛰어 들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바로 이 파무칼레가 성경에 나오는 히에라볼리 라는 곳이다. 이 곳에서 남쪽으로 6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라오디게아라는 고대 도시가 있었고, 바로 그 곳에 라오디게아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다. 라오디게아는 현재 터키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굴이 이루어 지고 있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졌을 1세기 당시에는 엄청난 부를 자랑했던 도시였다. 복음이 들어가서 교회들이 세워지기 까지 라오디게아는 이방 종교의 중심지였다. 신전들이 세워져 있었고 수많은 병자들이 온천욕을 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오늘날 처럼 병원이 없던 시절에는 온천수가 꽤 많은 사람들을 치유했던 모양이다. 필자가 어릴적만 하더라도 약숫물이 만병통치약 처럼 여겨진 것을 생각해 볼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듯 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라오디게아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라고 명령 하신다. 그 편지에서 주님은 번개와 우뢰와 같은 음성으로 말씀 하신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장 15절). 예수님은 왜 라오디게아 교회들에게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말씀 하시는가?
라오디게아는 히에라 볼리뿐만 아니라 골로세에도 인접해 있다. 골로세에는 눈덮인 얼음산이 있었는데 산에서 녹아 내린 차가운 물이 라오디게아로 흘러 내려왔고, 히에라볼리에서는 온천수가 라오디게아로 흘러 들어왔다고 한다. 뜨거운 온천수와 눈녹은 얼음물이 라오디게아에 흘러 들어올때 서로 섞이게 되었고 결국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마시기 역겨운 물이 되었다고 한다. 라오디게아 도시의 깨어진 돌들을 바라보며 유적지를 걸어 다닐 무렵 주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 하시는것 같았다. “복음에 그 어떤 것도 섞지 말라!”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말씀은 개인의 신앙온도를 말씀 하시는게 아니다. 개인의 신앙은 차가울 때도 있고 뜨거울 때도 있다. 필자는 목사인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의심하고 낙심하며 넘어질 때가 있고 때로는 산을 옮길 것 같은 뜨거운 믿음으로 비상할 때가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도 주님을 배반할 때가 있지 않았던가. 예수님이 이천년 전 라오디게아의 초대 교회를 통해 현대교회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바로 혼합주의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복음에 무엇을 섞었는가? 라오디게아는 Lycus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계곡에 세워진 도시중 하나였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당시 최고 수준의 Medical School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과 돈이 쉽게 모이는 곳이었다. AD 60년대 초에는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자력으로 도시를 재건할 정도로 경제력이 있었다. 라오디게아 교회들 안에 깊숙히 침투한 것은 바로 배금주의 였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계 3장 17절)라고 말씀 하신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믿었던 그 복음 안에 세속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섞여 버린 것이다.
물론 돈을 악하게 보아서는 안된다. 바울이 유럽과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러 갈 수 있었던 것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헌금이 있었기 때문이며 예루살렘에 가난한 자가 없었던 것은 성도들이 재산을 팔아 나눴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다.어쩌면 우리 이민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와 닮았는지 모른다. 물론 이민사회 안에도 가난한 자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한인들은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먹고 사는 문제는 이제 벗어난듯 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받는 고통은 ‘갖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더 갖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은 각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남들보다 더 좋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좋아요”를 강요한다. 물론 예수를 믿지만 돈도 믿는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편지 하며 이천년 후에도 똑같은 문제를 겪게 될 우리들에게 ‘복음에 아무것도 섞지 말라’고 경고 하신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도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주님이 토해낼 역겨운 신앙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고 경고하신다. 이것이 바로 이천년 전 라오디게아 교회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메세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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