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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을 몸서리치게 사랑한 적은 별로 없다. 어렸을 적엔 가난했고, 청춘일 때는 화염병을 들었고,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총을 들고 텅 빈 들판을 주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기에 태어나 자연스럽게 몸에 밴 근검절약이 삶의 철학인 줄 알았다. 뒤돌아보니 궁색한 습관이었다. 화염병을 만들고 전단을 만들어 거리에 나섰지만, 세상 판도는 그대로였다. 그로부터 30년, 아직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용광로의 쇳물처럼 융합되지 못하고 혼돈으로 요동치고 있다.

악이 더 악을 쌓으면 주인이 되는 국가, 욕심이 더 욕심을 더하면 군림하게 하는 국가. 공부를 잘할 수록 이상한 애들이 탄생하는 국가.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눈이 먼 공무원들 그들에겐 국가는 그냥 욕심을 채우고 한 판 멋지게 놀다 갈 수 있는 판에 불과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좋은 정치가를 못 가진 국민들은 희생이라는 업보만 달고 살아야 했고, 불의에 일어섰던 위인들은 하나뿐이 생명을 바쳐야 했던 나라. 아직 혼돈 속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못 가진 자는 더 빼앗기는 이상한 나라. 그 허울뿐인 나라를 지금까지 지켜낸 것은 수많은 이름없는 영웅 덕이다.

6.25는 이념이 만든 전쟁이다. 이념이 뭔지 모르고 전장에 섰던 수많은 사람 중에 리처드 케리도 있었다. 그의 직위는 미 해병대 중위. 인천상륙 작전의 선봉장이 되어 한국땅을 밟고 북진한다.
그리고 미 해병대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전장과 만난다. ‘장진호 전투’가 이것이다. 미 제1해병사단 1만5000명이 중공군 7개 사단 12만 명과 맞붙은 생사를 건 전투였다. 영하 30~40도 혹한 속에서 전투가 치러지면서 미 해병 1만5000명 중 4,500명이 전사하고 7,500명이 부상하는 지옥의 현장이었다. 그는 그 지옥에서 살아남았다. 그래서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10만 명의 일반인을 구한 흥남철수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 노구의 영웅이 프로 야구 시구 판에 선다. 공을 쥘 힘도 18.44m를 던져 포수 판에 닿을 힘도 없지만, 6.25 참전 용사들을 대표해서 선다. 그를 세운 것은 달라스 한인들의 사랑만이 아니라 그 스스로 서는 것이다. 아직도 살아있는 영웅들에게 그들의 건재를 보이기 위해서다. 하나둘 세월 속에 묻히는 영웅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한국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는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합니다.”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어쩌면 그가 투수판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역사가 될 수 있다. 길이 남을 일이다. 수천 개의 메달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전장에서 살아남은 전우들을 위로하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전우들에게 그가 영웅이고 전우들은 그의 영웅들이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영웅들이다. 어쩌면 생애 마지막 희망의 메시지를 ‘2019 코리안 헤리티지 나이트’ 통해 던질지도 모른다.

‘2019 코리안 헤리티지 나이트’는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의 역량을, 사랑을, 영웅을 위한 밤이다. 함께하는 모두를 위한 잔치다. 이민 와서 고생만 하는 한인 모두가 참석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한국을 몸서리치게 사랑하지는 않지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달라스 한인들은 사랑한다. 그 사랑하는 이를 위한 ‘2019 코리안 헤리티지 나이트’이다. 당신의 살아있음과 깨어있음을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사진, 글_김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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