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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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바다, 물, 바람 그리고 인성을 품은 젓대소리

 

이윤지_대금연주자 (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전수자 )

 

우연히 그녀의 대금연주를 들었다. 소리는 청아했다. 댓닢이 수런대듯 애 닮고 아련했지만, 단아했다. 꽉 찬 속을 비운 대금처럼 들숨과 날숨으로 소리를 내는 몸짓도 고요하고 가벼웠다.
그녀가 들려준 곡은 ‘인연’이었다. 익숙했지만 달랐다. 소리가 웅크리지도 뚝뚝 끊어지지도 않고 공기의 결을 타듯 맑고 단아하게 실내를 채웠다. 많은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청아하고 아려한 소리에 몸을 맡겠다.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떨림과 떨림의 만남은 긴 여운을 남기고 끝났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윤지 대금연주자는 나이는 어리지만, 내공이 확실한 고수다. 대금과 함께한 햇수도 벌써 25년이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처음 들은 대금소리에 매료되어 시작한 대금과의 애증의 여정이 소녀에서 성년으로 이어지고 있다. 손가락이 짧아 운지도 못했던 어린 소녀가 이젠 자신만의 소리를 지닌 전문연주자가 되었다. 그동안 손가락이 틀어지고 잇몸이 허물어지도록 자신의 소리를 찾아 부단히도 노력했던 결과가 이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곱 마디의 대나무 통은 제 속을 비우고 틀어진 몸을 불과 소금물 그리고 여덟 개의 구멍을 내고서야 제소리를 내듯 그녀 역시 25년을 오직 대금 소리에 매진했다.

좋은 연주자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있는 법,그녀에게도 ‘이철이’라는 훌륭한 스승이 계셨다. 17년을 함께한 음악 선배이고 스승이고 넘지 못할 벽이셨던 분이다. 그분은 큰 스승이었다. “소리는 자신을 닮는 법이다. 안에 것이 소리가 된다. 악하면 악한 소리요 선하면 선한 소리가 난다. 심성이 곱고 단아하면 소리도 곱고 단아해진다”. 스승은 언제나 부족함을 가르치셨다. 소리꾼은 넘치면 안 된다.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절실하게 찾아 부단히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이젠 스승을 뵐 수가 없다. 이제는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 이젠 스승의 유언처럼 “비우고 비워 너만의 소리로 채워라”를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그녀는 제25회 전국국악대제전 대상을 받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악학과 석사를 수료한 재원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수련기라면 앞으로의 길은 답습이 아니라 개척기일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 있다. 대금은 확실히 세계가 인정한 특이한 소리의 악기다. 플룻도 아니고 팬파이프도 아닌 독특한 우리의 소리다. 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희생으로 지킨 소리다. 세계 그 어떤 악기도 낼 수 없는 아련하고 아득하고 단아하고 청아하고 맑은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다. 그러면서 애달프고 슬픔의 떨림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악기다. 

소리는 연주자를 닮는다. 연주자는 소리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리 좋은 소리도 진정성이 없으면 죽은 소리가 된다. 영혼을 맑게 하는 좋은 소리로 세상을 맑게 했으면 좋겠다. 좋은 소리를 알게 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우리 것을 지키려는 열정과 헌신에 박수를 보낸다. 세상에 꼭 필요한 연주자로 우뚝 섰으면 좋겠다. 응원한다. *
 

사진_글 김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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