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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용상 칼럼 / 짧은 글 긴 생각  

‘혁신적 포용국가’...뭔 소리여?

국민 전 생애를 국가가 책임진다고라?

 

정부는 6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포용 국가 전략회의’에서 고등학교 무상 교육과 기초연금 인상 등 각종 복지·일자리 방안을 대대적으로 내놓았다. 일테면 ‘국민의 전 생애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미래 정책으로 ‘내 삶을 바꾸는 혁신적 포용국가’(Inclusive Korea)’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5월 24일 서울 어느 호텔에서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주최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관, 여타 11개 국책연구기관이 참여한 국제컨퍼런스에서 만든 `역작(力作 ?)’을 북한제 들기름 발라 ‘촛불’로 구워낸 것이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고등학교 무상 교육, 공공 임대주택 비율 9% 달성, 기초연금 30만원 인상과 아동수당 도입, 주 52시간 근로시간 확립 등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보건 복지·서비스 분야 공공(公共) 일자리를 2022년까지 34만개 창출 하겠다고도 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공정한 기회 보장으로 불평 등이 대물림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고 성 평등을 실현하며, 국민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고 함께 잘 살아야 한다”면서 “세계은행이나 IMF(국제통화기금) 등 많은 국제기구와 다른 나라들도 성장 혜택이 소수에 독점되지 않고 모두에 골고루 돌아가는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정부 관계자도 대통령의 입맛에 부응하듯이 “최근 소득 지표와 고용 부진도 일부 나타난 소득 주도 성장을 ‘포용 국가’가 뒷받침하게 될 것”이라고 양념을 발랐다. 그러나 이날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에 대한 재원 대책은 전혀 구체적으로 나온 바가 없었다. 결국 그 비용은 그냥 국민 세금으로 퍼붓겠다는 소리였다. 말하자면 ‘꽃노래’였고 ‘포퓰리즘적 말잔치’였다.
‘국민의 전 생애를 국가가 책임진다...’? 근데, 어떻게? 지금 국가 경제 상황을 보면 무슨 코미디 극 같다. 이 정부의 포용국가론대로 세금을 퍼부으면, 그 부담은 훗날 전부 지금 2030세대가 져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받들어줘도 시원치 않을 그 2030세대의 취업 길을 막고 있다. 귀족노조의 기득권 철밥통이 무서워 본체만체 하고 있고, 더하여 4차 산업혁명과 제조업 회생을 위한 규제혁신도 대통령은 입부조만 하고 여당이 깔아뭉개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도무지 청년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나? 포용국가 어쩌고 얘기하기 전에 눈앞에 닥친 일이나 제대로 하라는 것이 국민 심정일 것이다.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는 이에 대해 “21세기 들어 들어보는 최고의 헛소리” 라면서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정부는 그것이 이뤄지도록 정책적으로 뒤에서 모든 걸 도와주는 것이 옳은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본 복지라던 냉방비도 책임 못 지고, 최저임금 만원 못 지켰다고 사과는 왜 했나. 통신료 기본료 폐지 약속, 한중일 국제 로밍요금 폐지는 왜 못 지켰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즉 정권 스스로 공약으로 내세웠던 일부 국가주의적 정책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면서도 뜬금없이 “국민의 전 생애를 책임진다”고 공언하는 건 황당한 대국민 사기성 사탕발림이라고 비판에 날을 세웠다.
차명진 자유한국당 전(前) 국회의원은 이는 ‘포퓰리즘으로 국민들을 우매하게 만들어 권력자들의 입맛에 길들게 하여 정신적 노예로 전락 시키는 가장 악질적인 사탕발림’이라면서, 말하자면 “국가가 내 직업도 구해주고 결혼도 시켜주고 부부생활까지 일일이 지시하겠다”라는 얘기는 바로 ‘공산 사회주의적’ 발상에 다름이 없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네티즌 중의 한 분은 이 청사진을 접하고, “이제 대한민국은 머잖아 천국(?)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한반도 남쪽에서 단군 이래, 아니 예수님 오신 이래 메시아급 신흥 종교 교주 한분이 새로이 오신 것 같아서 흥분에 겨워 잠이 안 온다”고 하면서 허나, 제발 그 치매 양반의 엿장수 가위치기 때문에 요즘의 베네수엘라 같이 ‘내 집구석’이나 안자빠지게 했으면 좋겠다고 노골적인 비아냥을 마다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