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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펠리시티 허프만, 로린 러프린, 윌리엄 싱어

 

미국판 ‘스카이캐슬’ … 텍사스 대학도 연루

761가정·280억원대 뒷돈·유명 TV스타 연루
UT·예일·USC·UCLA·스탠퍼드·조지타운 등 명문대 비리 ‘충격’

 

12일 미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입시 비리 스캔들이 전모를 드러내면서 유명 연예인과 기업인 등 부자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과 일부 대입 컨설턴트의 거침 없는 불법 행위가 커다란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이번 수사에 전국적으로 200명이 넘는 요원을 투입한 수사당국은 학부모 33명, 대학코치 9명, 입시브로커 등 총 50 명을 기소했다. 하지만 핵심 인물인 입시 컨설턴트가 모두 761가족의 부정입학을 도와줬다고 말한 것으로 미 NBC방송이 13일 보도해 앞으로 더 큰 파장이 예상된다.
매사추세츠 연방지방검찰청과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결과 발표로 공개된 이들의 천태만상은 마치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일부 부유층의 과도한 교육열을 꼬집은 국내 드라마 ‘SKY 캐슬’을 떠올리게 한다.

UT Austin 부정입학 사례
이번 입시비리에서 UT 어스틴(Austin)도 자유롭지 못했다. UT 테니스 코치인 마이클 센터(Michael Center)는 재직 19년차였던 지난 2015년 10만 달러를 받고 한 학생의 부정 입학을 도왔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증인은 센터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한 학생을 테니스 특기자로 입학시켰다고 진술했다. 기소장에 따르면 2015년  2월 학생의 아버지가 45만 5,194 달러의 주식을 목격자의 회사에 기부했으며 4월 UT 어스틴은 학생에게 부분 장학금을 제공했다. 
이후 증인은 6월 어스틴 한 호텔 주차장에서 센터에게 6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해당 학생은 9월 장학금을 포기하고 테니스 팀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UT 어스틴에 이름을 올렸다. 작년 10월 증인과 전화하며 센터는 그가 9만 달러 이상의 돈을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달라스 모닝 뉴스에 따르면 UT 어스틴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자료 및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상태다. 5만 달러의 보석금이 책정된 센터는 지난 12일(화) 오후 법원에 섰다. 그의 다음 법원 방문은 오는 3월 25일로 보스턴으로 잡혔다.

‘미국판 김주영’
이번 입시 스캔들에는 한국 드라마 ‘ SKY 캐슬’에서 부정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역을 연상시키는 ‘미국판 김주영’이  중심에 있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 소재의 입시 컨설팅업체 ‘에지 칼리지&커리어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윌리엄 싱어는 30년 가까이 입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대학 운동부 감독들에게 뇌물을 주고 부정시험을 알선하는 등의 수법으로 부유층 자녀들에게 명문대 합격을 선사했다.
그가 2011년부터 올해 2월까지 대학 감독과 직원들, 입학시험 관계자들을 매수하기 위해 학부모들로부터 건네받은 뇌물은 무려 2천500만 달러(약 28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하버드대 출신의 ‘대리시험 달인’이 활약했다.
13일 NBC뉴스에 따르면 2004년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테니스 선수로도 4년간 활동한 입시 컨설턴트 마크 리델(36)이 입시비리의 총괄 설계자인 윌리엄 릭 싱어(58)의 청탁으로 시험 1회당 1만 달러(1,132만원)씩 받고 SAT·ACT 등 미국 대입시험을 대리 응시해준 것으로 밝혀졌다. ‘입시비리 먹이 사슬’에서 가장 윗단에 있는 싱어가 학부모들로부터 받은 돈을 전문적인 ‘대리 시험 선수’인 리델에게 나눠준 형태로 범행이 이뤄진 셈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리델이 모두 몇 차례나 대리 시험을 봤는지 밝히지 않았으나, 약 45만 달러(5억1천만 원)에 달하는 불법자금을 추징하려는 점에 비춰 수십 회에 걸쳐 대리 시험을 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휴스턴으로 날아와 한 10대 학생의 ACT를 대신 봐준 사실이 일단 확인됐다.
리델은 2006년부터 플로리다주 브래덴턴에 있는 대입준비기관인 IMG아카데미의 국장급 간부로 일했다. 리델은 이날 변호인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내가 저지른 행동 때문에 고통받은 모든 이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면서 “내 행위로 대학입학절차의 신뢰에 금이 갔다면 책임을 지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리델은 그러나 자신이 정상적인 컨설팅을 통해 대학에 입학시킨 학생 수가 1천 명이 넘는다고 강변했다. 리델은 엘리트 체육특기생 명문대 입학에 수완을 발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리의 온상
입시비리를 위해 싱어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먼저 그는 부유층 수험생들의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미리 매수한 감독관들이 있는 휴스턴과 로스앤젤레스(LA)의 특별시험장에서 SAT(미국 대입시험)와 ACT(미국 대학 입학 지원을 위한 시험)를 치르도록 했다. 뇌물을 받은 감독관이 수험생의 답안지를 고쳐 원하는 성적을 받도록 해준 것이다.
법원에 제출된 수사 자료를 보면 싱어는 수험생이 학습장애자를 위한 특별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다면 “ACT는 30점대, SAT는 1천400점대를 보장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ACT의 만점은 36점이고, SAT의 만점은 1천600점이다. 그 대가로 학부모가 낸 돈은 7만5천 달러(약 8천500만 원)였다.
한 예로 글로벌 사모펀드회사 TPG의 파트너 윌리엄 맥글래션 주니어는 싱어의 조언대로 아들이 이틀에 걸쳐 천천히 대입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학습장애를 가진 것처럼 꾸몄다. 싱어는 맥글래션에게 결혼 등의 핑계를 대서 자신이 매수한 감독관이 있는 휴스턴이나 LA의 시험장에서 아들이 시험을 보게 하라는 지시도 했다. 그러나 맥글래션의 아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수험생은 자신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수사당국은 밝혔다.
글로벌 법무법인 ‘윌키 파 & 갤러거’의 공동대표인 고든 캐플런은 자신의 딸 스스로도 알아차릴 수 없는 교묘한 수법으로 시험 성적을 조작할 수 있다는 싱어의 제안에 7만5천 달러를 선뜻 내주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내세워 대리시험을 치르게 하거나 건당 1만5천∼7만5천 달러에 입학시험 관계자를 매수해 정답을 빼내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NYT는 전했다.
이 외에 수험생의 인종과 기타 신상정보를 위조해 대입 과정에서 소수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의 특혜를 볼 수 있도록 주선한 일도 있었다.

경력·사진 위조 ‘스포츠 스타’
가장 흔한 수법은 부유층 자제들을 체육특기생으로 위장하는 일이었다.
싱어는 일명 ‘열쇠’(The Key)라고 불리는 자신의 컨설팅업체와 비영리재단을 활용해 학부모들이 준 돈을 세탁한 뒤 학교의 각 종목 감독과 행정당국자 등에게 뇌물로 건넸다고 한다.
학부모와 입시 브로커를 포함해 모두 13명이 체포된 상태다. 사기 공모, 업무방해 등의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최대 징역 20년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라고 미 언론은 전했다. 
검찰은 학부모 가운데 최대 650만 달러까지 뇌물을 제공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수십만 달러의 뇌물을 썼다. 이들이 입시 비리로 자녀를 부정 입학시킨 대학은 조지타운, 스탠퍼드, 웨이크 포리스트, UCLA, USC, 예일, 텍사스 대학 등이다. 부정입학한 학생들의 전공 종목은 축구, 요트, 테니스, 수구, 배구, 조정 등으로 다양하다. 
예일대학 여자축구팀 코치 루돌프 메러디스, 스탠퍼드대학 전 요트팀 코치 존 벤더모어 등이 브로커로부터 수십만 달러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에 있는 입시 컨설팅업체 에지 칼리지&커리어 네트워크 대표인 윌리엄 싱어가 학부모와 대학 코치 등을 연결하는 브로커 역할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싱어는 SAT·ACT 등 대학 입학시험 관리자들과 짜고 대리시험을 보게 하거나 성적을 바꿔치기 하는 수법으로 유명인사 자녀들의 부정 입학을 도왔다. 검찰은 “대학 측이 입시 브로커와 공모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부정입학한 학생은 입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UCLA, 스탠퍼드 등 일부 대학은 비리가 드러난 코치를 해고하고 자체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싱어는 해당 수험생들의 소속팀과 수상 경력을 지어내는 등 프로필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험생이 스포츠 활동에 참여한 것처럼 사진을 위조하거나,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진짜 운동선수의 사진에 수험생 얼굴을 합성하기까지 했다.
예일대 부정입학 사건의 경우 싱어는 학부모로부터 120만 달러를 받고 이 수험생이 캘리포니아 남부의 유명 축구팀 공동주장이었던 것처럼 경력을 위조하고, 예일대 여자축구팀 감독에게 40만 달러(약 4억5천만 원)의 뇌물을 줬다. 조정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학생의 사진을 위조해 조정 경력이 있는 것처럼 꾸며 USC 조정 특기생으로 입학시킨 사례도 적발됐다.

유명 TV 스타와 할리우드 배우
매사추세츠 연방지방검찰청 앤드루 렐링 검사와 연방수사국(FBI) 조지프 보나보론타 보스턴 지부장은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작전명 ‘바서티 블루스 오퍼레이션’으로 명명된 이번 사건의 전모를 공개했다. 작전명은 대학운동선수를 지칭한 것이다.
이번 사건에는 유명 TV 스타, 할리우드 배우, 기업체 CEO 등이 대거 연루됐다. 또 이들의 자녀들을 부정 입학시키기 위해 스탠퍼드, 예일, UCLA 등 내로라하는 명문대 운동부 코치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
학부모 중에는 ABC 방송 인기드라마 ‘위기의 주부들’로 우리에게 친숙하고 에미(Emmy)상을 수상한 바 있는 TV 스타 펠리시티 허프먼과 시트콤 ‘풀하우스’에 나온 배우 로리 러프린이 포함됐다. 러프린은 패션 디자이너인 남편과 함께 두 딸을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조정팀에 넣어주는 대가로 입시 브로커에게 찬조금으로 가장한 사례금 50만 달러를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러프린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브로커에게 발송된 이메일 등을 증거로 확보했다고 말했다.  USC에 들어간 러프린의 딸 올리비아 제이드 지아눌리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수백만 명의 구독자와 팔로워가 있는 소셜미디어 스타로도 유명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니셜을 따 OJ로 알려진 그녀는 대학입학 체험기와 일상생활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큰 인기를 끌었다. 허프먼도 수만 달러의 뒷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뉴욕 소재 로펌 공동대표인 고든 캐플런 변호사, LA 소재 부티크 마케팅업체 대표 제인 버킹엄, 뉴욕 소재 포장업체 대표 그레고리 애벗 등 기업체 CEO들도 다수 포함됐다. 

이번 입시 스캔들은 너무나 경쟁이 치열하고 살인적인 대학 입시 탓에 일부 학부모가 부정행위의 유혹에 빠져드는 과정을 부각한다고 NYT는 진단했다. 그러나 부유층 학부모들의 입시 부정은 성실히 입시를 준비한 다른 학생들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앤드루 랠링 연방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의 진짜 희생자는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라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의 입시 전문가 아룬 폰누사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싱어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 개인변호사 마이클 코언에 비유하면서 “그가 입시업계에서 한 일은 마이클 코언이 법조계에서 한 일과 비슷하다”며 “그는 교육 컨설턴트가 아니라 해결사일 뿐”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