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노라마

‘가을밤, 피아노 선율에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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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컨서트 ( MMC Fundraiser night with 피아니스트 이화정 )

 

 

달라스의 가을은 없는 계절이다. 느낄 새도 없이 훅 지나가기 때문이다. 지루한 땡볕의 계절이 5월부터 10월 말까지 지속하다 갑자기 가을은 안부만 묻고 자리를 뜬다. 그리고 낙엽이 쓸쓸하게 밟힌다. 우리의 가을은 그렇게 갑자기 왔다 가기 때문에 특별한 이들에게만 있는 계절일 뿐이다. 그 특별한 가을을 채우는 하우스 콘서트에 추대를 받았다. 

 

오늘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이화정 씨가 아니다. 먼 길 마다치 않고 찾아온 발길이다. 아득하고 팽팽한 기운을 깬 것은 사회자였다. 김명기 씨는 피아노 전설의 연주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한다며 운을 떼고 몇 번을 들었지만, 이분의 피아노 연주는 아주 특별했다고 고백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이분이 왜 전설이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가을밤 커피 한잔을 들고 정원을 걷는 기분으로 오늘의 연주를 즐기자는 말로 맺었다.

 

피아노의 선율이 공기를 가르고 귀에 와 닿았다. 소리는 공기의 진동 때문에 파생된다. 우리는 아주 작은 진동도 느낄 수 있는 최첨단 기능인 청각이 있다. 미세한 떨림이 공기와 부딪혀서 소리를 내고 우린 그것은 듣는다. 소리는 아주 특별한 것이다. 50년 넘게 피아노에 올인한 피아니스트의 선율은 달랐다. 그의 연주는 기운 생동한 청춘의 힘으로 소리를 다스리지 않고 장인의 손끝으로 지문을 뜨듯 선율을 풀어나갔다. 눈앞에서 듣는 선율은 성난 파도였다 금세 이슬비처럼 촉촉했다가 맑고 환했다를 반복하며 끝도 없는 심연으로 이끌었다.

 

피아니스트에게는 유학 시절에 만나 30년을 함께한 친구가 있다. Timothy Brown이라는 작곡가다. 그가 30년 우정과 사랑을 담아 헌정한 피아노곡 (12 Preludes)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간직한 곡이다. 피아니스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의 헌정 곡으로 연주회의 서막을 열었다. 뜻은 알 수 없지만 담담하고 먹먹하고 아득했다. 두 사람의 텔레파시로 엮은 그물에 걸려든 청중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듣는 것뿐이었다. 소리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냥 느끼면 된다. 눈을 감든 연주자의 어깨를 보든 그것도 아니면 손끝을 쫓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감각만을 의지한 채 넋 놓고 듣는 것뿐이다.

 

없다고 치부하지만, 달라스의 가을은 분명 존재한다. 음악도 계절도 우리 발끝으로 찾아오기를 원한다. 우리가 다가서는 만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이 계절이고 문화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아름다움도 내 품에 안아야 따뜻해지듯 넓은 가슴을 자연에 혹은 음악에 맡기자. 이해할 필요도 없고 따질 필요도 없다. 그냥 넋 놓고 계절에 빠지고 음악에 빠지고 사랑과 우정에 빠지자, 지금 우리가 할 최선의 삶은 무언가에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에 미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