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노라마

‘중년, 인문학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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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중년이다. 미래에 대한 대책은 없다. 거창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적은 더더욱 없다. 나이 또래에서 평균치를 유지하며 살았다. 때가 되어 상급학교로 진학하고 때가 되어 군대에 가고 때가 되어 결혼하고 또 때가 되어 자식 낳아 키우며 살았다. 
평균대 위처럼 균형 잡아 한참을 걷다 그만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텍사스의 달라스라는 땅에 도착해 있었다. 삶의 일탈이 아니라 운명의 이탈이었다. 그리고 낯선 행성에서 외계인처럼 27년을 살았다. 명줄이 붙어있으니 아직은 살아있다는 증거일 거다. 그러나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렸다.

 

남들이 바라는 정상엔 못 올라갔지만, 이제는 미련없이 내려가야 할 떄가 되었다. 많이 온 만큼 길게 내려갔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어디로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평균대 위처럼 조심조심해서 내려가고 싶진 않다. 어차피 궤도에서 이탈한 삶 아니던가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그재그로 내려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올라갈 때 보지 못한 예쁜 꽃이라도 불 수 있지 않겠는가 싶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한 법이다. 올라갈 땐 힘만 있으면 되지만 내려갈 땐 힘보다 균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게 중심이 무너지면 낭떠러지로 곤두박질하는 게 내리막길이다.

 

40년을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친 노 시인이 인문학을 들고 달라스를 찾았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과거를 바탕으로 오늘은 살고 오늘을 바탕으로 내일을 내다보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인류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묶은 백과사전 같은 것이다. 확실한 무기도 없는 연약한 인류가 지구를 다스리는 것은 경험을 공유하고 기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문학은 인간이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한 학문이다. 노 교수는 자신의 삶 속에 있던 길을 보여주지 않고 역사 속의 길만 줄기차게 얘기했다. 그리곤 길을 잃었다. 길은 잃어도 길은 있는 법이다. 남이 알려주는 길이 아닌 내가 찾아 나선 길이 진짜 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중년, 누군가는 올라갈 길이 필요하겠지만, 대부분은 내려갈 길을 찾는 나이다. 죽을 힘을 다해 올라가지 않고 조심조심 내려와야 할 때다. 무게 중심을 어딘가에 두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을 볼 때다. 인문학은 먼 곳에 있는 등대가 아니라 발밑을 밝힐 지혜다. 자신의 삶과 생애에 철학으로 재무장하는 도구가 인문학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은 아니지만, 50년 넘게 살아온 지혜로 삶에 관여할 때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지와 철학으로 생의 내리막길을 나섰으면 좋겠다. 어쩌다 중년이 된 지 모르지만 삶에 축적된 에너지가 당신의 내리막길은 맡을 것이다. 내리막길은 속도가 아니라 무게 중심의 이동이다. 천천히 양옆에 핀 꽃을 마음껏 즐기며 내려가는 길이 됐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