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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용상 칼럼 / 짧은 글 깊은 생각  

 

‘위원회’ 천국, 대한민국

 

최근 국내 상황을 보면 소위 ‘촛불 정권’은 법적 근거도 없고 공식적인 것이 아니면서도 직접민주제, 참여민주제로 위장하는 ‘xx 위원회’들을 우후죽순 만들고 있다. 일테면 ‘적폐진상조사위원회’ ‘공론화위원회’ ‘통일부정책혁신위원’ ‘개헌특위자문위원회 등등...괴상한 ‘위원회’들이 만들어지고, 더하여 그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요괴(妖怪)급 인사들이 줄줄이 차고 들어와 ‘위원’이란 미명 아래 ‘인민재판식 가위질’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법적 근거가 없는 이들 위원회들은 한마디로 북(北)의 세포조직인 ‘동네 인민위원회’를 연상케 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본래 ‘위원회’란 복수의 의사결정자가 책임을 지고 정부정책을 자문하는 일종의 하청 조직이라 한다. 하지만 이 조직의 치명적 약점은, 결정의 책임을 정부로부터 면책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오히려 바로 그 약점을 활용하기 위해 위원회를 오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국정 책임과 권한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정부 기관이, 확신이 없는 정책의 결정을 애매한 각종 위원회에 넘겨 그 권고안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처리하자는 것. 즉 매사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엉뚱하게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라고 호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 좌파 정권이 슬슬 불을 지피고 있는 개헌특위자문위원회에서 내어놓은 헌법개정안 보면 더욱 기가 차다. 왜냐면 모든 법조항 중 ‘자유민주주의’라든가 ‘자유시장경제주의’라는 구절에서 ‘자유’와 ‘시장경제’라는 어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중고생 역사 교과서 개정안도 그렇다.  얼핏 생각하면 우매한 ‘궁민(窮民)’들은 거 뭐 수식어 좀 없다고 우리가 자유 없는 나라가 되겠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이는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공산 국가로 가겠다는 뜻이다. 늘 부르짖는 북의 ‘조평통’과 이 나라 주사파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의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말한다. 

자료를 보면,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을 세우고, 민주적 절차 아래 다수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국민주권주의와 입헌주의의 틀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체제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입헌민주주의라고도 하며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통치 및 공동체의 모든 생활이 헌법에 따라서 영위되어야 한다는 정치원리를 말한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헌법은 기본권, 법 앞에의 평등, 행복권, 사회보장권, 사생활 보호권, 적법절차의 원리, 사상과 언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을 보장한다. 민주적인 선거 절차와 의회 제도를 갖춤으로써 다수가 그 정치적 의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한편, 핵심적 인권의 헌법적 보장을 통하여 다수의 횡포에 의해 소수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제어한다. 

 

반면 좌파들이 주장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파생된 허울 좋은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bourgeoisie/자본가 계층)의 주도가 아닌 노동자 농민이 주도하는 국가체제를 뜻한다. 요약하면, 프롤레타리아가 기반이 되어 국가의 영도 하에 사회 전체주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민중주의 시스템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고 부르주아지는 척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원래 사회의 기득권층을 물리치고 노동자와 농민(이른바 무산계급)들끼리 자발적으로 형성된 민주주의라는 뜻이 강했으나, 과거 소련의 스탈린주의에 의해 관료(공무원)제 형식의 공산당 독재로 변질되었다. 옆 동네와 윗동네의 경우엔 이것을 다시 한 번 마오이즘, 주체사상으로 변질시켜 인민을 억압하고 있다. 

 

결국 유토피아적인 환상으로 의도는 좋았다 해도, 이는 이미 역사에서 검증되었듯 국가가 ‘막장의 길’로 가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장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현직 대한민국을 장악한 좌파들의 앞날이 빤히 보인다. * 

 

손용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