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

가스펠 칼럼 아름다운 것

2018.03.23 10:51

KTN_WEB 조회 수:7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은 보기 좋다고 한다. 문제는 아름답다는 기준이 뭔가에 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인가. 미국에서 멀쩡히 돌아다니던 옷차림과 얼굴로 한국에 갔다가 잔뜩 치장했거나, 의느님(?)의 손길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 속에서 당혹감을 느꼈단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것이 저기선 별게 아닐 수도 있단 거다. 미얀마의 어떤 부족은 여성들이 어릴 때부터 놋쇠로 만든 링을 목에 걸게 해서, 목길이를 상상 이상으로 늘인다. 우리가 볼 때는 힘들겠다 싶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목이 길면 미인이다. 미의 기준이란 게 아주 상대적일 뿐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뭐가 좋다고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잘못하면 “네 눈만 잘난 것이냐”고 경치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무엇이 아름다움의 기준인지 말하기는 어려워도, 아름다워지고 보기 좋아지려는 마음 만큼은 어느 시대, 어느 땅덩어리를 막론하고 똑 같다. 고대 중국에서는 ‘전족’이 유행이었다. 시작은 홍등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한번 파고들자 희한한 풍습이 되어 여성의 발을 옥죄기 시작했다. 10세기 송나라 적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근 천년을 이어온 악습이다. 발이 작을 수록 아름답다는 신념은, 결국 10 센티 안팎의 발이 가장 보기 좋다는 괴상한 기준까지 만들어내었다. 어린 여성의 발을 천으로 꽁꽁 묶어서 발육을 저해하면, 그들이 자라서 제대로 걷는 것이 힘들어진다. 약간 찡그린 듯한 얼굴에 양쪽에서 하녀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대며 걷는 여성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의 한양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송원찬 교수는 이런 전족을 오늘 날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과 연결한다. 놀라운 발상이다. 물론 전족과 하이힐은 서로 다른 형태지만, 심리는 흡사하다는 것이다. 하이힐을 신어서 발에 변형이 온 여성들의 발을 엑스레이로 찍으면 전족의 모습과 흡사하단 것이 그의 전언이다. 그러면서 덧불이는 말이 이렇다. “하이힐이 원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변질된 것처럼, 전족도 그렇게 또 다른 이름의 패션이자 아이템이었다. 지금 관점에서 징그러운 형태의 전족을 보고 있노라면 인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 물론 현대에 생겨난 또 다른 형태의 전족들도 한둘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저체중이 그렇고 성형이 그렇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자연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까? 당당한 ‘생얼’을 위하여 건배!” (송원찬 교수의 중국어와 중국문화 / 문화일보 2018. 3. 12). 음미할 만한 구석이 분명히 있는 말이다. 

 

아름다움은 좋지만, 잘못된 방향의 습관과 유행은 오히려 사람을 괴롭힌다. 이쯤해서 생각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가져야 하는 아름다움이다. 그건 뭘까? 김동호 목사의 설교를 우연히 들었다. 하나님이 세상과 교회 둘 중에서 무얼 더 사랑하셨을까? 그분의 대답은 ‘세상’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단 거다. 교회의 목적은 세상이다. 세상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한다. 그러니 교회가 하는 일은 세상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김목사는 계속해서 한 마디로 딱 쪼갠다. “지금의 교회는 스스로가 목적이 되었다.” 자기들의 모임을 치장하기 위해서 건물을 고치고 땅을 늘이고, 아름답게 만들었으니 와서 보라고 자랑한다. 교회가 스스로의 목적이 되면 남는 건 무얼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함께 모여서 궁리를 하곤 하는 목사님들과 말을 나눴다.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사람 속 이야기를 담는 잡지 비스름한 걸 좀 만들어 보잔 이야기가 나왔다. 기존 교회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건 좀 피하는 게 지혜롭지 않냐는 염려가 얼핏 테이블 위에 올라섰다가 사라졌다. 교회가 바라봐야 할 대상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 안믿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다. 기존 교인이 아니라, 교인 아닌 사람이 볼 때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야 진짜 교회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데교회는 겉으로는 아름다웠다.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 그건 아니라고 질타하셨다. ‘진짜 아름다움’이 없다는 거였다. 문제는 사데교회는 정작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이쯤되면, 코미디다. 그로부터 이천년이나 지났으니 이런 우스개는 이제 멈춰서야 한다. 교회는 아름다워야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단지,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러해야 할 뿐이다.  *

 

기독교에 관한 문의 또는 신앙 상담 문의는 214-714-1748
(조이풀 교회)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김세권 조이풀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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