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

가스펠 칼럼 게제르에서 (5) 

2018.09.14 14:42

ohmily 조회 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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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제르에서 (5) 

 

게제르에서 본 주상은 댓다 컸다. 크기를 어림잡아 보려고 곁에 섰더니 정말 엄청나게 컸다. 이들 주상은 돌을 세운 것이긴 해도, 바알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바알이 가나안에 넘실대기 훨씬 이전에 세워진 걸로 보인다. 바알신화가 발견된 우가릿(Ugarit)은 얼마나 오래 됐는가. 신석기 시대인 주전 6,000 년 경부터 도시가 있었다. 대략 1,450 경에 전성기를 맞았다가 청동기 시대가 끝나면서 1,250년 경에 멸망했다고 알려진다. 우가릿에서 발굴된 바알신화가 담긴 토판의 연대는 주전 1400년에서 1200년 어간으로 보인다. 학자들 대부분은 가나안으로 바알이 기어 들어온 걸 주전 1,000년 어간으로 본다. 그러니 바알의 나이가 얼마나 먹었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가나안에 퍼진 건 좀 나중이란 걸 알만하다. 그러니 게제르의 주상에서 바알을 생각하긴 힘들다. 

그렇다면 게제르의 돌덩이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걸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아일랜드 출신의 맥컬리스터(R.A.S. Macalister)였다. 그는 1902년에서 1909년 사이에 이곳을 뒤졌다. 높이 10 feet (약 3미터)가 넘는 커다란 돌이 열 개나 주욱 서있는 걸 봤으니 흥분하기도 했겠다. 주상은 땅에 그냥 박힌 게 아니라 (그랬다면 죄다 넘어졌겠지), 석회암으로 깎은 기단 위에 세워졌다. 맥컬리스터가 주변을 파보니, 갓 난 아이들(생후 일주일 정도 밖에 안되는)의 뼈가 담긴 항아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그는 이곳이 가나안 신들에게 제사하던 성소 즉, 산당(High Place 바마 / 열린 공간에 야외에 제단을 떡 하니 세우고 제사행위를 했으며, 그런 이유로 성소로 불렸다)이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이곳에서 아이들 인신제사가 드려졌단 것이다 (참고: 렘 32:35; 대하 28:1-4; 겔 20:26-29). 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오늘 날의 고고학자들, 특히 디버(Dever)는 맥컬리스터가 흥분한 나머지 현장보존을 잘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이곳이 산당이었다기 보다는 신과 맺은 언약을 기념하는 장소(commemorating a covenant site)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참고: “Commemorating a Covenant” in the January/February 2015 issue of BAR).

여기서 사실 그 옛날에 뭘 했는진 잘 모른다. 여러가지로 나름 설명은 할 수 있겠지만, 돌덩이가 세워진 정확한 이유를 대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분명한 건, 사람이 뭔가 신성과 손을 잡았다고 느낀 사건이 있었단 거다. 그러니 저 큰 걸 열 개 씩이나 세우지 않았을까.

게제르의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이 땅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빠졌던 시절을 기억한다. 선지자들이 탄식했듯이, 이스라엘 전역이 우상숭배로 몸살을 앓았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아세라의 배우자로 섬긴 일마저 있었다. 1975년 여름에 고고학자 제에브 메쉘(Ze’ev Meshel)은 시나이 사막의 동쪽에 위치한 쿤틸렛 아즈룻(Kuntillet Ajrud)을 발굴하면서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커다란 토기에 고대 히브리어로 “사마리아의 여호와와 그의 아세라”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이런 내용으로 보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을 숭배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 같다. 바알에게 배우자인 아세라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게도 배우자인 아세라가 있다고 생각하고 섬기면서, 혼합주의적 신앙을 보였다. 토기에 적힌 글씨 밑으로 소 두 마리와 한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는 그림이 있다. 큰 소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작은 소는 아세라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주상 정도의 돌덩이 급으로, 미물인 황소급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게제르 돌덩이 앞에 서서, 우리는 늘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 놓인 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며 산다는 참담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우상은 아주 쉽게 눈에 잡힌다.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은 과묵하시다. 모습을 보여주시지도 않는다. 그런 이유로 줄타기 하면서, 내 신앙은 늘 정통이라고 고집했던 건 아닌가. 우상이 얼마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곳에 왔으니, 신기한 걸 보고 그저 희희낙락할 줄로만 생각했다. 이렇듯 돌덩이 때문에 회한에 젖을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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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권
조이풀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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