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

가스펠 칼럼 구레네 사람 시몬

2018.03.30 13:07

KTN_WEB 조회 수:3

구레네 사람 시몬

 

우리 몸을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지만, 굳이 환산했을 때, 몸의 가치를 100이라고 한다면, 그 중에서 눈의 가치가 90이라고 합니다. 눈의 값이 90%라는 뜻입니다. 이는 “눈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말하자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무엇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무엇을 보는가?”보다 “무슨 눈으로 보는가?” 내지는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마가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 사건 이전과 이후에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한 자세한 배경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심한 채찍질과 심문을 당하신 예수님은 심신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서 처형 장소로 이동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끌고 가던 로마병사들은 마침 거기를 지나던 구레네 시몬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5장 41절에 보면,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그러니까, 이 말씀은 당시 로마군인이 식민지 주민에게 이런 식으로 자기 짐을 지고 가게 한다든지 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식민지 주민으로서는 그렇게 해야 했던 것입니다.
또 “구레네”라는 곳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근처의 상당히 먼 곳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레네 시몬은 아마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상당히 먼 거리를 여행해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시간이 오전 9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구레네 사람 시몬은 아침 일찌감치 예루살렘에 왔던 것 같고, 그렇게 우연히 거길 지나가다가 로마병사의 눈에 띄어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레네 사람 시몬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황당하고 달갑지 않은 일이었겠습니까? 거기다가,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위해서 멋지게 차려 입은 옷은 이제 그 십자가에 묻어 있었던 예수라는 죄인이 흘린 피로 엉망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길가의 구경꾼들은 아무런 관계도 없었던 자기를 십자가의 주인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구레네 사람 시몬은 속으로 “나는 아니야. 나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야.” 내지는 “정말 재수가 없네. 하필이면 내가 이런 일을 당하게 되다니?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소위 세상적 눈으로 보면,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는 재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눈으로 보면, 결과적으로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끝까지 동참하게 됐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수님과 함께 나눠지게 됐던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직접 자기 몸에 묻히게 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5장 21절을 보면, 구레네 사람 시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성경에는 알렉산더와 루포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고 있지 않아, 알렉산더와 루포가 누구인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로마서 16장 13절을 보면, “주님 안에서 택하심을 받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루포”는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 루포이고, “그의 어머니”는 시몬의 아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 바울은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롬 16:13, 새번역)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과 아내는 로마교회를 위해,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귀한 일꾼으로 쓰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고난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사형 틀이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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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문생명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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