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

짐승의 표(標)인가? 예수님의 이름의 인(印)인가? (2)

 

어떤 분은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짐승의 이름의 표를 받았다고 받은 구원이 취소되고 영원한 지옥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은 진리이고 사실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구원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렇게 구원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서 명백하고 구체적으로 지적하신 말씀을 거역해서야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짐승의 이름의 표를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으면 짐승을 경배하게 되고 유황 불못에서 쉼이 없는 고통을 받는다고 경고하건만 굳이 그 표를 받을 이유가 있는가! 

우리는 짐승의 이름의 표가 우리가 식별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계 13:18)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짐승의 이름의 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나 참으로 미련한 사단과 그의 추종 세력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경고한 말씀들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666이라는 숫자를 일부러 새기고, 짐승(Beast)이라는 말을 애용하고, 짐승의 형상과 우상을 만들고, 짐승을 탄 음녀의 모습을 새긴 화폐와 깃발과 조각물을 만들고,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 바벨탑을 계속해서 다시 세우고, EU(유럽 공동체) 건물이나 조각물에서 보듯이 하나님께 보란 듯이 대적하는 일들을 감행하고 있다. 마치 에돔처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말 1:4)고 하나님께 반기를 들며 대항한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과 달리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바로 그 일을 똑같이 행한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나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이 아닌가!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도모와 사단의 계책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분이신가를 입증해준다.

짐승의 이름의 표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확실히 드러나지 않아서이지 마지막 짐승이 등장할 때에는 분명히 우리가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이것이 짐승의 이름의 표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식별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기 전에 그와 같은 조짐이 지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깨어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담이 어떻게 죄를 지어 하나님의 동산과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나고 죽음을 맛보게 되었는지 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따먹고 쫓겨나 죽음을 맛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아담이나 하와가 볼 수 없고, 알 수 없고, 몰라서 실수해서 따먹은 열매이었는가? 그들의 상상과 생각 속에 있는 나무가 아니라, 동산 중앙에 실제로 존재하고 보고 만지고 먹을 수 있는 나무요 열매이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짐승의 이름의 표도 무슨 상상이나 이론이나 형이상학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영적인 어떤 표가 아니다. 실제로 오른손이나 이마에 새겨진 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실생활 가운데 일어날 일이고 표이기 때문에 지혜와 총명으로 그것을 알아서 결단코 받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유황 불못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고 결코 쉼이 없는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계 14:9-11).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눈에 보이는 어떤 표로써 구원이 취소되거나 받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아담을 통해서 이것을 미리 입증하시지 않았는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고 한다면 굳이 금하시고 경고하신 짐승의 이름의 표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라고 하면서 그 예수님께서 받으면 유황 불못에서 영원히 쉬지 못하고 고통 받는다고 경고한 일을 왜 굳이 감행하려고 하는가! 그게 미련하고 불신앙적 행동이 아닌가!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고 총명한 자의 행동이다. 그게 참 믿음이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구원의 믿음이 아니겠는가! 

 

종교칼럼-이정엽 목사.jpg

 

이 정엽 목사

(뉴비전교회 / 214-534-7141)

 

A054.pdf 다운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