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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갈등  

목사님, 양떼를 버리지 마세요!

나쁜목자는 양떼에게 먹이를주고 양떼에 물을 주고 양과 상호 작용할 수 있지만, 가장 큰 순간에 양을 버리면 그가 한 일이 무효화 될 수 있다.
예수님은 또한 비유적으로 자신을 목자로서 그리고 사람들을 양으로 생각하신다. 그는 자신을 선한목자라고 하셨으며 선한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칠 정도로 양들을 돌보는 목자라고 규정하셨다.(요10:11-13)
의심할바 없이 예수님은 선한목자이시며 다시오실 때 양떼들의 목자가 되시겠지만 그러나 그가 계시지 않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양떼들을 선한목자로 맡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목사들’이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의 ‘목자’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긍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선한목자에 대한 정의로 측정된다.
나는 지난 10년간 목사로 사역해 왔는데 선한목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솔직히 인정한다면 늑대가 와서 으르렁 거리고 위협할 때 급하게 도망가려는 유혹을 수없이 받아왔다. 늑대는 목사에게 여러가지 형태를 취한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의 갈등, 재정문제, 교인들의 삶에서의 반역죄, 개인이나 교회의 결점에 대한 낙담,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설교나 리더십에 대한 불만족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밤에 도망가기 보다 몇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1. 목사의 사임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바울은 에베소장로들에게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행20:28)고 말씀했다. 하나님은 현재 당신이 있는 곳에 부르시고 그 사역을 맡기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임은 당신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당신이 가는 그곳에 부르셨고 또 거기를 떠나도록 하실 것이다. 그때까지 거기서서 늑대들을 참아야 한다.

 

2. 목사의 사임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사역을 놓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가졌다. ‘어두움 후에 빛을.’ 성경과 역사는 지혜롭게 되기를 말씀하고 있다. 종종 어두운 시간 후에는 빛의 영광스런 날들이 온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을 믿고 그분의 주권안에 머물며 쉼을 가져야 한다. 빛이 오고 있다.

 

3. 목사의 사임은 다음 목자에 대한 양들의 신뢰를 침식시킬 수 있다. 
들판에서, 여러분이 늑대에게 양을 맡기면, 그는 그들 중 몇마리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양들은 새 양치기를 가진 후에도 여전히 취약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양들은 다음에 다른 늑대가 나타날 때 그가 또 도망갈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다음목사는 양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하는데 그것은 그가 목회를 하는데 엄청난 방해가 된다. 그러므로 돌아서서 장기목회를 바라보고 큰 그림을 그리라. 늑대에게 양떼를 맡기면 몇 년 동안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생각해 보라.

 

4. 목사의 사임은 당신의 목회적 동기에 무엇인가를 말할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늑대가 나타나면 도망가는 삯군목자에 대해 요10:12절에서 말씀하셨다. 그들은 이기적 목적으로 양을 치며 늑대가 보이면 빠르게 이득을 계산하고 늑대로 인해 어려움을 맞는 것과 이익을 계산해 보고 자기의 거취를 결정한다. 
‘그들은 나에게 충분히 보상하지 않습니다.’라고 삯군은 말한다. 이와 반대로 예수님은 그가 얻는것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섬기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시려 세상에 오셨다고 막10:45에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죽기까지 늑대와 대면해서 자기 양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셨던 것이다. 그분은 오직 양들에 관심이 있으셨다. 당신도 그 주님의 마음과 동일한가?  
왜 당신은 목회를 하고 있으며 왜 양떼를 떠나려는지 생각하고 있는가? 동기는 예수님때문인가?

 

5. 목사의 사임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을 대신해 당신의 할 수 있는 것에 기초한 것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직면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희망이 없어’라고 자신에게 말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성경의 하나님의 빛안에서 진리에 대한 선포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말하지 않는 예례미야의 고백을 들어야 한다.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렘32:17). 
우리는 종종 도망 친다. 왜냐하면 늑대가 우리에게 너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내 옳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늑대를 마주 할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 당신이 할 수있는 일을 떠나기로 결심하지 말라. 하나님이시면 모든 일이 가능함(마태 복음 19:26) 을 믿으라.      

 

번역_ 이종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