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

구원, 습관도 새로워진 삶

 

에베소서 2:1-10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최근 교단에서 주관하는 다민족 행사에 가서 뱅퀴잇 한 순서로 아프리카 형제 자매들이 찬양하고 댄스하는 시간에 왠지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서로 인종과 언어, 피부색이 달라도 주님을 찬양하는데 같은 뜻과 마음을 갖을 수 있는 것이 왠지 감격스러웠습니다. 시민권을 받을 때 진행자가 미국은 ‘멜팅팟’이고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이 한 국민이 된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눈물을 훔치던 생각을 하면서 여러 다양한 민족이 주 안에서 하나되는 것이 감격스러웠습니다. 우리 모두를 은혜로 구원하셔서 이렇게 하나되게 하신 주님은 위대하십니다. 
엡 2:1-10이 헬라어는 한 문장입니다(1:3-14, 15-24).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를 과거에 악한 자, 사단을 따라 속아서 사는 생활에서 건져주신 은혜는 한 마디로 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은혜로 구원얻은 삶을 이렇게 하나로 연결된 긴 문장으로 표현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죄용서로 영혼이 구원을 받았지만 또한 어두움에서 행하던 악한 행실에서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주제를 더 생각하기 위해서 하나의 예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풍자하는 노래가 있는데, 일본이 당시 조선이던 한국을 침략하여 합방하고 36년 동안 지배한 생각을 하면 정말 괘씸합니다; 일본 말로 “사과한다”라는 단어가 마땅히 없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과오를 회개하기는 커녕, 그 때 잠시 차지했던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개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미안합니다”라고 말해 본 적이 언제입니까? 그냥 생활 속에 “Excuse me!”정도가 아닌, “제가 심한 말을 해서 상처를 주어 미안합니다” 등과 같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용서를 구한 적이 최근에 있읍니까? 또 그런 사과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 때가 언제 입니까? 만일 없다면 우리도 일본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다 죄인입니다. 
“죄와 허물”의 정의는 과녁을 빗나가다” 또는 “정도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입니다. 과녁을 벗어나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바른 길에서 이탈 되듯이 인간은 마땅히 걸어야 될 길을 가는 것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기대하시는 삶을 살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 삶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죄 때문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이미 생명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전에 이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본문의 몇 가지 단어 설명이 필요합니다. 먼저, “세상”(“the world”)은 성경에서 중립적으로 쓰이나,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대비시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음에, 공중 권세 잡은 자는 마귀를 가리킵니다. 공중은 악한 영의 거주지 또는 악한 영의 어두운 영역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또한 옛성품(old self)은 구원받기 전의 성품으로, 하나님 대신에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기 쉬운 성품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옛성품은 그대로 남아서 새로운 성품에 따른 영적생활을 방해합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후에도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아직 있습니까? 화를 냅니까? 그런 이유는 옛성품이 성도에도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flesh)이라는 말은 사람의 몸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삶에서 옛성품에 지배되어 악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성품을 상징합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는 것은 악한 마귀의 영향을 받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구원받은 것은 이런 삶에서 구원 받은 것입니다. 성도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스스로 구원할 수 없듯이 죄인된 인간이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람을 사랑하신 큰 사랑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은 그리스도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 마지막 결론으로 우리 구원의 의미와 목적을 다시 설명합니다. “지으심을 받은 자”(“포이에마”)는 하나님의 첫 창조를 가르키는 단어입니다.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난 것은 하나님의 재창조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성도는 옛 습관과 삶을 벗고 새로운 삶의 목적을 가져야 하는데,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선한 일”은 어떤 특정한 일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여 사는 삶이 선한 삶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선한 일을 위해 부름받은 공동체입니다.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은 성도가 이루는 교회는 하나님의 선한 일, 참 예배를 드리며, 선교, 복음전파, 구제, 봉사가 있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삶을 반영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재창조 사건으로 영혼구원 뿐만 아니라 예전에 악한 영을 따라 어두운 가운데 행하던 습관에서도 새롭게 변화받은 삶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는 다시 그런 어둠 속에 행하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십니다.  *

 

김상진
글로리 침례교회
담임목사

 

종교칼럼-김상진 목사.jpg

 

A059.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