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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신앙을 떠나는 핵심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들이 신앙을 떠나는 것에 대한 많은 토론이 있어왔다. 사람들은 종교와 과학간의 명백한 긴강과 같은 지적문제의 중요성, 아이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빈약한 신학의 역활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아이들이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며 지속적인 신앙을 개발하는 것에 종종 간과했던 중요한 문제가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씨에스 루이스와 네가지 사랑

씨에스 루이스는그의 책 ‘네가지 사랑’에서 ‘선물의 사랑’과 ‘필요의 사랑’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선물의 사랑’에 대해 가족의 웰빙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예를 들고 있다. ‘필요의 사랑’에서는 외롭고 두려워하는 아이가 위로와 보호를 받으려고 어머니의 팔로 들어오는 아이에 대한 예를 들고 있다.  이러한 사랑은 이기적이거나 부적절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아이들은 어머니의 양육을 받도록 의도되었으며 어머니는 자녀들을 돌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루이스에 의하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전적으로 ‘선물의 사랑’이다. 아버지는 그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신다. 아들은 자기 자신을 아버지에게 돌려주고, 세상에 자신을 주고, 세상을 아버지에게도 주고, 세상을 아버지에게도 돌려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과 예배가 필요하지 않으며 그분의 은혜의 연장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다르다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드릴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하다. 루이스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사건의 본질에서 볼 때, 항상 아주 크고, 때로는 완전히 사랑에 빠져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과 다음세상에서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루이스는 추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을 제시한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객관적인 필요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쇠퇴하면, 우리의 믿음도 쇠퇴할 것이다. 따라서 Lewi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험, 필요, 배신"에서 벗어나면 종교가 사라지는 사람들의 짧은 신앙심은 위선적이라고 말할 이유가 없는 듯하다. 그들은 진실하지 않아야 할까? 그들은 필사적이었고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다른 말로 만일 누군가 안전과 위안을 위해 즉각적 필요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위험과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 신앙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이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연관이 있는가? 이에 대해 생각해 보라. 만일 한 학생이 가족, 교회 또는 학교에서 사회적 혹은 관계적 필요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런 필요가 충족되면 그의 신앙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 외부적인 필요를 충족시킨다면, 필요가 사라지는 즉시 또는 다른 장소에서 학생은 자신의 믿음을 버릴 것이다.

젊은이들과 하나님의 필요

어릴때 어머니에게 왜 내게 하늘의 아버지가 필요한 것인지 질문한 것이 기억난다. 나의 육신의 아버지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를 돌봐주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볼 수 없었고 만질 수도 없고 말 할수도 없는 하늘의 아버지가 필요한지를 단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성장해서 나의 죄의 깊이를 깨닫고 나를 죄에서 구원해줄 구세주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게 되어서야 주님의 필요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죄의 무게를 깨닫고 예수께서 나의 주와 구원주라는 것을 경험한 후에야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앙이 실제적인 것이 되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선교여행을 가야만 한다. 그들은 멘토가 필요하다. 어려운 질문들을 해야 한다. 좋은 신학적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이 그들의 신앙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려면 그들의 죄로 인한 상함은 구제주가 필요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필요한 것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인식하고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그들은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신앙을 개발할 수 있다.

 

번역_ 이종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