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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가 루터가 가르친 다섯 개의 ‘오직’교리

 

10월31일은 루터의 종교개혁기념일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오직’의 원리를 강조했다.
우선 루터는 ‘오직 성경’을 강조했다. 그는 정말 성경을 사랑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늘 학자로 남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단 한 절의 깊이도 다 측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평생 성경을 연구했지만 죽기 전 루터는 이런 겸손한 말을 남겼다. “선지자들과 함께 교회를 100년 정도 이끌어 보지 않은 사람이 성경의 맛을 충분히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지식에 관한 한 우리는 거지이다.” 루터는 교회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에 복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황도 절대 권위를 휘두를 수는 없다. 모든 교리는 성경의 해석에서부터 도출돼야 한다.

 

루터는 이어 ‘오직 은혜’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루터는 자신의 죄를 용감하게 인정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 죄인이 용서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이지 결코 인간의 공로나 선행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 루터는 선행과 성화의 중요성 역시 강조했다.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대제사장 그리스도는 은혜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루터는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께 의존적인지를 자주 강조했다. 루터는 신자가 매일 회개하는 삶을 살라고 촉구했다. 루터는 성령을 좇아 사는 삶에 대해 성령, 말씀 묵상, 믿음, 기도를 더하는 삶이라 불렀다. 그런 인생은 헛된 영광을 추구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그 일에 자주 실패하고 넘어진다. 그래서 신자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회개다. 루터의 95개조 논제 중 제1항목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주이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하셨을 때 그것은 믿는 자들의 삶 전체가 회개가 되기를 원하신 것이다.”
루터는 ‘오직 그리스도’도 강조했다.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구원의 길도 없다. 루터는 성경의 근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서슴지 않고 말했다. 에라스무스와 자유의지에 대해 논쟁하면서 루터는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덜어내 보라. 그러면 무엇이 남겠는가”라고 질문한다. 성경은 그리스도로 채워져 있어서 그리스도를 제외하면 성경의 핵심 모두를 다 놓치는 것이 된다.
당시 로마가톨릭은 ‘암묵적 신앙’에 대해 말했다. 신앙의 내용에 대해 명백한 깨달음이 없어도 교회가 믿는 바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교회가 베푸는 성사에 그저 참여함으로써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루터는 반대했다. 신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교리문답과 소교리문답을 작성해 가르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직 믿음’도 설파했다. 그 안에 복음의 핵심이 들어있다.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기독교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되려는 종교가 아니다. 의롭게 되는 일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루터에게 ‘믿음’이란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는 일이다.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 ‘겸손의 신학’을 지향했다. 이름을 드러내는 것도 극히 싫어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켜 루터파라고 하자 화를 냈다. “내 이름은 숨겨 주십시오. 저는 다만 더러운 구더기 부대자루와 같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주인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루터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강조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이 충만히 나타날 때 영광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성품을 드러낼 때 역시 영광 돌린다고 한다.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다. 루터가 보기에 당시 로마 교황청은 스스로 영광을 차지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인은 하나님의 영광만 추구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하나님만 생각하고 기억하며 인정하고 높이고 경배하며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그에게만 예배드린다.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란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는 걸 뜻한다.

 

종교개혁이 500여년 지난 지금 오늘날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5대 원리에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개신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돼버렸다. 루터는 먼저 자신을 개혁했다. 또한 교회의 개혁자가 되면서 동시에 교회의 건설자가 됐다. 오늘 한국교회에도 자신을 먼저 개혁한 뒤 교회를 개혁하고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