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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칼럼 찢어진 성전 휘장

2017.05.02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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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 칼럼 ] - 안광문 생명샘 교회 담임목사

찢어진 성전 휘장

마가복음 15장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성전 휘장이 뭘까요? 이 휘장은 성전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었고, 이 휘장을 경계로 해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휘장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지성소는 뭘까요?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성소에는 누구든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만 그것도 정해진 시간과 의식을 거친 후에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조차 자기 죄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로 지성소에 들어 갔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휘장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 휘장은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사람들의 죄로 인해 단절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이 휘장이 찢어지게 되었다는 말씀은 이제 우리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말씀인 겁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에서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절에서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힘입어서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 니고데모가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인자도 들려야 한다.” (요 3:14, 새번역) 이렇게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셨고,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그 날밤 니고데모는 이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니고데모는 왜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요 3:2, 새번역)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요 3:2, 새번역) 이 말은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니고데모는 당당하게 낮에 오지 않고, 아무도 볼 수 없는 밤에 올 수밖에 없었을까요?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갔다는 사실을 다른 바리새파 사람들이 알게 되면 가만 있겠습니까? 아마 배신자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위와 기득권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7장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비난할 때, 니고데모는 비록 아주 소극적이었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했다가 다른 바리새인들에게 핀잔만 듣고 말았습니다. 

 

니고데모는 어렵사리 예수님을 만났지만,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혼돈스러움만 더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따르자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해야 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하자니, 양심에 가책이 심했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혼돈과 혼란만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하면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장사 지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니고데모는 자기가 가진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험과 목숨의 위협을 이겨내면서도 예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니고데모가 예수님 십자가 보혈을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된 반응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니고데모의 반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요한일서 4장 11절을 보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에 감격하고, 기억하고, 반응해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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