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

거기에다가 자리를 잡고

 

창세기 11장 31절에서 보면,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아내 사라, 조카 롯과 함께 가나안으로 가려고 고향 바빌로니아의 우르를 떠납니다. 바빌로니아의 우르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이라크 지역으로서 유프라테스 강 바로 근처에 있고, 또 페르시아만에서도 무척 가까워서 비옥하고 육상과 해상 무역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내와 아버지, 조카와 함께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 고향을 떠난 이유는 아마도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이가 없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를 약속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가나안은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직선방향으로 서쪽에 있었고, 지도상으로 보자면, 곧장 서쪽으로만 가면 가까울 것 같지만 아마도 당시 길이나 지형상 그럴 수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아브라함 일행은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서북쪽 하란이라는 도시로 이동하였습니다. 하란도 서쪽으로는 지중해, 동쪽으로는 바빌로니아 지역, 남쪽으로는 팔레스타인 지역, 더 남쪽으로는 이집트까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당시 자녀의 문제가 중요한 문제이고, 또 하나님께서 이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말씀했다고 하더라도 조상대대로 살던, 아주 익숙하고 편안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장 하란이라는 도시만 하더라도 바빌로니아 우르와 다른 사람들, 다른 언어와 문화와 풍습이라는 환경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당시에 아이를 가지려고 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두번째 부인이나 첩을 들여서 아이를 가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도 그렇게 해서 아이를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시의 문화적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윤리적이지 않다거나, 도적적이지 않다고 비난할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당시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사람들이 다 따라가는 이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는 비상식적이고 어리석은 결정과 선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다지만, 하나님이 누군지? 하나님이 어디 있는지? 정말 가나안으로 가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건지? 어떻게 가질 수 있다는 건지? 증거를 보여주면 좋을 텐데.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다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브라함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아브라함도 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고, 신뢰해서 그랬다기 보다는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절박함을 믿음이라고 인정해 주셨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이 안정적이고 익숙한 고향 땅을 떠나 모든 게 낯선 하란으로 갔다는 것은, 그것도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은 이는 아무리 절박함 때문이었다고 치부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대단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창세기 11장 31절 후반부를 보면, 아브라함 일행은 아예 거기에다가 자리를 잡고 삽니다. 아마 아버지 데라가 연로했기 때문에 더 이상 가나안으로 가는 게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선 하란 땅에서 어느 순간에 이제 살만 하게 됐고, 이제는 하란 사람들과 말, 문화, 풍습도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는 하란이 양면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소망, 희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믿음의 Icon이자 동시에 거기에다가 자리를 잡고 살다 보니 어느덧 하란이란 곳이 너무 편해지고, 그러므로 가나안에 가야할 이유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안주의 Symbol. “이만 하면은 됐어. 여기까지 오게 된 거도 대단한 거야” 어느 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자기만족을 하게 하고, 안주하게 만드는 자기만족, 안주의 Symbol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영적인 하란은 무엇입니까? 지난 2017년까지는 영적인 하란에 머무르면서 스스로 만족하였다면, 새로 시작하는 2018년은 다시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적 가나안으로 발을 옮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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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문 생명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