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

사랑으로 내리는 결론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 .” (고전 13:1-7)
“큰 바위 얼굴”은 나다나엘 호오돈이 1850년 발표한 단편소설입니다. 어네스트라는 어린이가 주인공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전설 대로 마을 앞산의  큰 바위 얼굴을  늘 본받으려고 자기 성찰을 하다보니 전설대로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큰 바위 얼굴은 누구입니까? 물론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보여주신가장 중요한 성품은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보여주는 주님의 포도나무 공동체의 특징도 말씀에 순종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또한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 제인 먼저 언급되는 열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랑의 송가를 쓴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배경을 살펴보면 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사랑을 강조했는지 알게 됩니다.  고린도는 씨저가 재건하여 약 100년 정도 된 신흥 도시였고 따라서 한창 발전하는 로마의 도시였습니다. 지리적으로 항구도시로서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였고, 이런 지리적 잇점을 살려서 권력과 경제적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또한 아프로디테 여신 숭배로 오는 음란함도 있었습니다.  이 세속의 물결이 흘러들어와 어떤 사람이 아비의 첩을 취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식적으로도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 그노시스 주의, 즉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에 대한 논쟁도 있었습니다. 
특히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배경의 성도가 있고 영적으로 은사가 다양한 교회였습니다. 여러 은사가 교회를 위해 잘 사용되면 교회를 세우는데 덕을 세우지만 서로 대립되고 비교가 되면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사의 혼란이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에게 12장과 14장 은사에 대한 설교를 하는데, 13장은 그 가운데  위치하여 은사의 사용에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문학 구조로 보여주는 강조를 합니다. 12:31에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했는데, “가장 좋은 길”이 사랑으로 은사를 사용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왜 사랑이 중요할까요? 진정한 사랑이 없이 행하는 종교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신앙에 열심인 성도들도 돌아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방언 문제를 심중히 다룹니다. 그러면서 예언의 능력, 산을 옮길만한 믿음,구제와 자신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헌신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진정한 사랑에 근거하지 않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는 별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특성은 무엇입니까(4-7)? 본문에서 바울은 사랑을 연역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귀납적으로 묘사하여 스스로 깨닫게 합니다. 처음 둘은 긍적적 동사의 묘사이고, 그 후로 연속적인 부정적 표현의 묘사가 있고 다시 사랑의 긍정적 묘사로 돌아옵니다. 사랑의 여러 특성을 긍정과 부정적 표현을 대비시켜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은 먼저 오래 참는다고 합니다. 오래 참는 것은 다른 사람이 준 상처에 보복하지 않습니다. 오래 참는 것, 즉 인내는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롬 2:4; 벧전 3:20); ‘온유하며’라고 번역된 단어는 원래 ‘친절,’ ‘자비’를 의미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어서 바울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전 3:3에서 고린도교회에 시기와 분쟁이 있는 것을 책망합니다. 시기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여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자신이 가진 은사와 지식을 자랑하고 특정 지도자 중심으로 분파가 생겼었습니다. 오늘 날 교회에서도 쉽게 부딛히는 문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시기와 자랑과 교만을 사랑으로 대체하기를 권면합니다. 

 사랑은 또한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례를 다루면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신앙의 유익을 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사랑은 성내지 않고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하고 잊어버린

 

사랑이기도 합니다(고후 5:19).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바울은 사랑의 특성을 요약하면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오래 참아주고, 믿고 바라고 견디는 것입니다. 사랑은 너무 현실만 보든지 과거 지향적이지 않고 미래 지향적입니다. 성숙한 믿음의 특징인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행동과 삶에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따라서 공동체로서 교회는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은사에 관한 설교는 공동체의 사랑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공동체로서 가장 건전한 교회는 사랑이 있는 교회입니다. 믿음이 공동체 안에서 길러진다면 사랑은 공동체 안에서 체험됩니다. 할 수 있다면 우리 교회를 사랑의 실천이 있는 공동체로 세워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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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글로리 침례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