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CMIT 음악원 20세기의 첼리스트 

2018.04.20 11:06

KTN_WEB 조회 수:13

20세기의 첼리스트 

 

음악.jpg

 

2. 에마뉴엘 포이어만 (Emanuel Feurmann)
포이어만은 1902 년 폴란드의 갈리시아  지역의 음악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했는데, 엔드핀 부분을 위쪽으로 해서 붙잡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엔나에서 본인의 바이올린 데뷔 무대에서 카잘스의 음악을 듣고 첼로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12세에 비엔나 필하모닉과 하이든 D 첼로 콘체르토를 협연하며 데뷔하였습니다. 그는 마치 제왕과 같은 장엄함과 이완된 상향된 자세, 그리고 비할 데 없는 재능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카잘스가 해왔던 것처럼 높음 음역대에서 첼로의 소리를 마치 현혹적인 소프라노의 콜로라투라 창법처럼  소리내는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16세의 나이에 그는 콜로냐에 있는Gurzenich Conservatoire 의 교수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후에 베를린의Hochschule für Musik 에 멤버가 됩니다.  포이오만은 1920년대 유럽 전역을 다니며 연주회를 하는 스타로 떠오릅니다. 
1935년 그의 미국 데뷔는 꽉 채워졌습니다.  그 콘서트에 왔던 그의 동료 첼리스트들과 다른 이들은 그 특별한 첼로 연주에 매료되었습니다. 파블로 카잘스와 야노스 스타커 모두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 
나찌의 영향력은 쮜리히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이어만은 오스트리아와 베를렌에서 연주와 티칭을 계속해 나갑니다. 결국에는 그는 나찌가 침입했을 때 잡히고 맙니다.  포이어만은 바이올린 연주자인Bronislaw Huberman 이 팔레스타인으로 밀입국 시켜 안전하게 하려고 노력했던 음악가 중 한명입니다. 
포이어만은 뉴욕에 자리를 잡고 그의 친구인  폴 힌데미스 ( Paul Hindemith) 를 비롯한 많은 현대음악가들을 후원합니다.  힌데미스는 그런 그를 위해 두개의 트리오와  스트링 듀오, 그리고 첼로 콘체르토를 작곡해 헌정합니다. 포이어만은 학기 중에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커티스음악원에서 후진을 가르치며 동시에 여름에는 엘에이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기도 합니다.
그는Jascha Heifetz와 함께 역사적인 콜라보레이션이라 여겨지는 브람스 더블 콘체르토를 녹음하였고,  바이올리니스트인Primrose와 피아니스트Rubenstein과 함께 챔버 뮤직과 트리오를 녹음하고 연주합니다. 그들의 이러한 발견은 모든 피아노 트리오 역사에 지금까지도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작은 수술 후에 포이어만은 예상치 못하게 1942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 시대 가장 촉망받던 음악가는 미쳐 빛을 보기도 전에 요절하고 맙니다. 
포이어만의 남겨진 레코딩 중에 제일은 드보르작의 론도( Rondo) 와 포퍼의 Spinning Song일 것입니다. 너무 오래전 레코딩이라 화질은 좋지 않지만 유튜브에서 손쉽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최원경 CMIT 원장

 

B042.pdf 다운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