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피아니스트 송혜영의 음악에세이]

 

더 낮게 더 깊게, ‘진짜’를 찾아 나선 여정 

선우예권 피아노 독주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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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반클라이번 콩쿨의 열기로 뜨거웠던  포트워스 배스홀,  텍사스에 성큼 다가선 가을을 여는 연주회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돌아왔다. 이번 연주는 클라이번 2017-2018시즌의  막을 여는 첫 연주로서,  승자의 첫 귀환을 반기는 청중들의 높은 기대와 흥분으로 만석을 이루었다. 

 

마지막 곡인 라벨을 제외하고는 오직 모짜르트와 슈베르트로만 이루어진 그의 프로그램이 발표되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콩쿨 우승자인 그가 지난 콩쿨 기간 동안 배스홀을 화려하게 울렸던 라흐마니노프나 프로코피에프, 심지어 쇼팽 리스트 한 곡 조차 없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돌아 올 것을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의 민낯을 투명하게 거울에 비추어 내는 곡들로만 독주회를 이끄는 일은 연주자에게 있어 드문 경지의 예술적 정직성과 성찰력이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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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MOZART Romance in A-flat Major, K. AnH 205/MOZART Rondo in A Minor, K. 511/MOZART Sonata No. 10 in C Major, K. 330/SCHUBERT Moments musicaux, D. 780/ RAVEL La Valse

첫 곡인 모짜르트의 짧은 소품 내림 가장조 로망스는 따뜻하고 달콤한 음색을 물들이며 시작되었다. 연이은 가단조 론도로의 이동은 자연스러운 의외성을 선사하며 부드러운 음악적 전환을 이루었다. 그는 조성과 악상의 변화, 변화음의 출현 등에서 아름다움을 웅변하기 보다는 극도의 자연스러움으로 시공간을 채워 나갔다. 유려한 흐름 속에서 보석같은 내성의 보이싱을 놓치지 않는 사려깊음과 우아함 또한 돋보였다. 그의 모짜르트는 음의 유희와 자극에 노출되지 않은 순수의 세계, 기쁨과 슬픔이 함께 오묘하게 엉겨 공존하는 인간 내면의 본연을 향해 청중을 이끌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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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소나타 또한 정중하고 정제된 해석을 선보였다. 섬세한 보이싱, 직접적으로 연출된 대조가 아닌 레이어를 창조하는 다이나믹, 우아함과 물 흐르듯 자연스러움을 끝까지 간직한 그의 모짜르트에서는, 마치 그 자신이 품은 음악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지키기 위한  선전포고와도 같은 치열함과 경외감이 공존했다.

 

슈베르트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을 위해 작곡한 악흥의 순간 (Moments Musicaux, D. 780)은 여섯 개의 짧은 소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레가토는 소리가 창조해 내는 모든 순간을 노래하는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숨소리 조차 편히 내지 못하고 귀기울인 청중들에게 조용한 적막 속에 울려 퍼지는  흥얼거리고 울렁이는 콧노래의 아름다움을 고이 전달했다.  평소 슈베르트를 가장 흠모한다고 밝혀 온 그. 그는 슈베르트의 연주는 노래가 아닌 그 무엇에도 자신의 영혼을 내어 주지 않겠다는 듯 구도자로서의 의지가 녹아 든 따뜻한 음성을 들려 주었다. 많은 사람에게 위로의 음악을 남기고 자신은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다 간 가객 슈베르트의 영혼을 위로하듯.

 

마지막 곡인 라벨의 라 발스는 마치 고독하고 엄숙한 긴 여정을 함께 해 준 청중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축의 예식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어떤 기술적 화려함의 순간에도 그의 음악은 매몰되지 않았고, 그의 음악적 열정은 당당하면서도 겸손했으며, 특유의 우아함의 날개짓으로 작곡가가 그린 환상의 세계로 인도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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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는 초심으로 청중 앞에 설 수 있는 범상치 않은 정직함의 연주자 선우예권. 이번 연주회를 통해 그가 남긴 것은 음악에 대한 경외, 예술에 대한 감사였다. 청중들은 이 젊은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로 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노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따뜻한 신뢰의 갈채를 보냈다. 때때로 아쉬움으로 남았던,  공기를 환기시키는 모멘텀, 청중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울림과 여백을 조금 더 남겨 두는 일은 그 인생의 관록과 함께 더욱 깊어 갈 것이 분명하다. 승자의 왕관을 스스로 내려 놓고, ‘진짜’를 향한 두려움 없는 여정에 올라선 젊은 대가의 미래를 함께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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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Weatherford College Artist in Residence

송혜영 피아노 스튜디오

www.hyeyoungs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