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듀오 아줄 달라스 연주회를 마치고 

“존재해 주어 고마와요.”

 

올 해로 팔 년 째 접어든 필자와 피아니스트 에이미 거스탑슨이 함께 한 피아노 듀오 아줄의 달라스 연주회 시리즈가 막을 내렸다. 이번 연주회는 바하, 리스트, 구노, 바인, 루빈스타인, 생상 등의 종교적 색채와 영적 메세지를 담고 있는 피아노곡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웨더포드 컬리지와 태런트 카운티 컬리지, 달라스 중앙 도서관에서의 연주를 마쳤고, 내년 2월에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펜실베니아 주 등에서 같은 프로그램의 연주회를 더 가질 예정이다. 피아노가 만들어낸 소리는 영원의 시간 속으로 사라졌지만 , 연주회가 막을 내린 그 자리에는 늘 다양한 관객들과의 만남이 주는 기쁨과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남겨진다.

 

 

생의 첫 음악회  
웨더포드 컬리지 알켁 퍼포먼스 센터에서 열린 피아노 듀오 아줄의 연주회. 백발의 립스틱이 고운 관객이 다가와 정중히 “이 연주회가 내 일흔 일곱 평생에 참석한 첫 음악회였어요.” 라며 조심스레 프로그램을 펼치며 사인을 요청한다. 착한 손자가 모셔다 주어 올 수 있었던 감격스러운 첫 음악회를 오래 간직하고 싶었을 그녀의 마음.  평생을 기다려 온 그녀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만난 오늘의 흔적을 우려내듯, 나와 에이미는 정성스러운 사인을 담아 답례했다. 
연주회를 다니다 보면 평생의 첫 번째 음악회였다고  찾아오는 관객들을 거의 매 번 만나게 된다. 작년 카네기홀 연주회 후에도 마지막까지 뒤늦게 남아서 감사를 표현하고 돌아간 관객 중에는 이것이 일생에 참석한 첫 음악회였으며 자신에게 주는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는 한 중년의 관객이 있었다. 
작년 여름 스페인의 작은 도시 칸다스에서의 독주회를 마친 다음날 우연히 길을 걷다 나를 알아보고 손을 잡아 끈 한 무리의 노부인들은 내 손을 놓지 못하며 그들의 첫 음악회였다고 했다.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손이 얼얼해 지도록 뜨겁게 감사와 감격을 표현하시는 모습에 내 마음은 저려왔다. 통역을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그들이 내게 전한 마지막 인사는 “존재해 주어 고마와요.”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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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칸다스 연주 후, 길거리에서 감사를 표하는 노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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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듀오 아줄 연주회

 

시위대와 바하
다운타운에 위치한 달라스 중앙 도서관 내의 콘서트 홀.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연주회 시리즈는 주말을 음악으로 채우고 싶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채워진다. 첫 곡인 바하의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연주하려 두 연주가가 피아노 앞에 앉아 숨을 고르는 순간,  전문 연주홀과는 달리 방음이 철저하지 못한 도서관 벽을 타고 이내 확성기를 든 시민들의 시끄러운 함성과  구호가 무대로 잠입한다. 일요일 오후 도서관 건물 밖 길에서는 시민들의 시위가 한창인 모양이다.  전화기라면 꺼달라고 요청이라도 할 수라도 있지만 연주를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이런 예상치 않은 사고(?)를 겪어야 하다니. 가뜩이나 경건하고 고요한 첫 곡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 지 우리는 잠시 난감해진다.  하지만 이내 우리의 손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피아노 위로 올라 간다. 그리고 내 입가에는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져 나갔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의 무질서한 함성과 바하가 함께 울려 퍼지는 이 공간이  눈물나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은 내게 익숙한 종류의 전율이었다. 십 여년 전 나는 텍사스 게이츠빌에 위치한 여성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일 년 동안 음악 수업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전자 키보드에서 울려퍼지는 내 연주를 경이로운 표정으로 감상하던 나의 가장 열렬한 관객들.  바하와 베에토벤과 함께 웃고 울던, 오직 음악에 존재를 맡기고 스스로 시인이 되고 용서와 자유를 만끽하던 그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스며들던 바하를 들으며 내게 찾아온 알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은, 교도소에 음악을 맘껏 울려 퍼지게 하던 그 환희가 겹쳐 졌는지 모른다.  척박한 이 땅의 한 골짜기에서는 지금도 누군가를 위해 바하가 울려 퍼지고 있으리라.

칠 십 평생을 기다려도 단 한 번도 음악이 닿지 못한 곳에, 세상에서 버려지고 찢어지고 상처난  그 곳에 음악은 전달되어야 한다.  더 낮은 곳을 향해 흘러 가려는 음악의 숙명을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음악 때문에 새로운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연주자의 삶,  전달자로서의 소명을 확인시켜 주는 관객들이 있어 연주자는 다시 무대로 향한다.  아빠 손을 잡고 찾아온 네 살 아이도, 손자의 부축을 받고 찾아온 일흔 일곱의 노인도, 길거리나 교도소에서도,  언어도 성별도 나이도 아무런 장벽 없이 함께 음악을 나누었던 나의 관객들이여,  존재해 주어 고마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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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 평생 첫 연주회였다는 노부인과 그녀의 손자와 함께 

 

글_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Weatherford College Artist in Residence

송혜영 피아노 스튜디오

www.hyeyoungs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