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음악] 피아니스트 송혜영의 음악 에세이  

 

쇼팽의 피아노 레슨

 

19세기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프레데릭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은 역사상 피아노가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그의 제자들의 증언에 기초하여 쓰인 책 ‘Chopin : Pianist and Teacher : as seen by his Pupils’ 는 쇼팽의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과연 어떤

선생이었을까? 그의 레슨실을 노크해 본다.

 

교육자 쇼팽
쇼팽에게 가르치는 일은 작곡과 함께 그의 서른아홉 해의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교육의 중요성과 선생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왕성한 작곡활동을 하면서도 매일 이른 아침에서 오후의 반나절을 평균 하루에 다섯 명 정도의 문하생을 가르치는데 사용했다.  그는 항상 정확한 시간에 단정한 차림으로 나타나 레슨을 시작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어린이나 초보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쇼팽에게 배우게  되기까지는 아주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받아들인 학생과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까지 함께 나눌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쇼팽은 학생들의 개인적, 음악적, 기술적 문제들에 대한 인격적 이해와 신뢰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학생들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방법과 적절한 때를 잘 알고 있었다. 학생의 심리적 상태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닌 그는 “너 자신이 되어라. 네가 느끼는 대로 자신을 표현하라. 나는 전적으로 무엇이든지 네가 하길 원하는 것을 신뢰한다. 스스로 만든 이상을 자유롭게 따르라.”라는 격려로 학생들을 북돋아 주었고, 이러한 진심 어린 그의 격려는 학생들로 하여금 표현의 기쁨과 예술적 자유를 충분히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또 스스로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쇼팽은 학생의 어깨 뒤에서 설명하는 것 뿐 아니라,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연주해 주기도 했다. 그것을 본 제자들은 쇼팽보다 완전하고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없을 것이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스스로 곡을 분석하고 작품의 분위기를 정하도록 유도했다. 이렇듯 철저한 직업 정신과 교육적 혜안을 지닌 쇼팽의 교육자로서의 명성은 전 유럽과 러시아에 널리 퍼졌다.    

 

쇼팽의 가르침
쇼팽은 학생들이 암보로 연주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악보를 보고 연주하도록 권장했다. 빈틈없이 실수와 잘못을 지적해 내느라 종종 두 세 마디를 완성시키기 위해 한 시간을 보내는 일도 허다했다. 특히 그는 손가락 번호에 대해 무척 엄격하였다.학생들에게 손가락 번호를 한 번에 제대로 익혀서 다시는 바꾸는 일이 없도록 가르쳤다. 또 쇼팽은 손가락이나 손목만으로 연주하던 동시대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팔 전체를 이용하는 테크닉을 강조했다. 그는 항상 천천히 부드럽게 꽉 찬 톤으로 연습하길 요구했다. 그는 “마치 벨벳 손으로 건반을 쓰다듬듯 해야 한다. 건반을 때리지 말고 느껴라”고 종종 말했다.

 

실제 레슨에서 쇼팽이 무엇보다도 강조했던 것은 듣는 훈련을 통해 귀를 정제시키고 근육의 조절과 이완을 돕는 정신적 연습이었다. 쇼팽의 유일한 피아노 선생이었던 지브니(Zywny)는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사실상 그 자신은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운 셈이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연습에 있어서 손가락의 기계적 반복을 경계했다. 듣기와 터치의 섬세함을 발굴하는 것은 항상 그의 첫 레슨의 중대한 목적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오래 연습하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오히려 양서를 읽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산책할 것을 권했다. 쇼팽의 교수법에서 테크닉은 수단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기에, 기술이나 거대한 울림만으로 뽐내는 연주를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제자들의 눈에 비친 쇼팽은 엄격한 가르침과 따뜻한 격려를 적절하게 배합한 투철한 소명감의 선생이었다. 또 연주와 창작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으로 훌륭한 음악가로서의 삶을 몸소 보여준 학생들의 롤모델이자, 불필요한 전통에 얽매이기보다는 새롭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개개인의 학생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발굴한 창조적 교육자였던 것이다.

 

책을 통해 제자들의 시선으로 기록된 쇼팽을 만나는 일은 참으로 흥미로운 여행이었다. 내게는 세 살 어린이로부터 여든 셋의 노부인,  발달장애인에서 교도소 수감자 등 다양한 제자들이 있어왔다. 그들은 음악가 뿐 아니라  학자, 엔지니어, 외과의사 등의 다양한 자리에서 음악을 즐기며 살아 가고 있다. 인생과 함께 나이 먹을 수 있는 음악적 결을  찾아 음악 안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과 빛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이 세계는 내게 무대에서 연주하는 시간만큼 소중한 소명이다. 또한 연주를 지속하며 발전해 나가는 스승으로 제자 앞에 서고 싶은 열망은, 나를 다시금 무대로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하다.

 

한 해를 여는 이 시간 쇼팽의  오래된 레슨실에서 내게 가장 선명히 떠오르는 이도 역시 제자들이다.  피아노 레슨을 통해 인격적 변화를 경험했고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헤쳐 나갈 용기를 얻었다는 그들의 고백을 인생의 가장 빛나는 훈장으로 간직하며 살고 있는 내게는 말이다.  새해 더 열정적으로 음악하자. 더 많이 나누자. 쇼팽과 위대한 음악가들이 역사에 심어 놓은 그 빛을 따라…

 

송혜영 
피아니스트, 음악박사
웨더포드 칼리지
Artist in Residence

www.hyeyoungs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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