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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용상 칼럼 / 짧은 글 깊은 생각  

 

‘EN 선생’과 성추행과 ’노벨문학상’

 

근간, 유명 문인 EN 씨와 여타 문화 교육 법조 정치인 등 사회 전반 ’끗발’ 인사들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이른바 ’미투’ 운동으로 세상이 여간 시끄럽지 않다. 그들은 그야말로 ’뿌리 조심’ 안하다가 순식간에 얼굴에 오지게 오물을 덮어쓰고 전전긍긍이다. 한 연예인은 ’쪽’팔려 스스로 목도 매달았다.

 

허나, 딴 물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중 EN 선생은 필자와도 제법 인연이 있었던 양반이라 마음이 착잡하다. 왜냐면 젊었던 시절, 주변의 모모하던 사람들과 어울려 청진동 골목에서 그 양반과 얼려 술자리도 종종 했었기에, 그리고 그의 기행(?)이 가끔 도를 넘는 일을 실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주로 입담으로 19금의 Y담이 주제였기에 솔직히 그 자리에 참석한 남녀 누구도 그것이 ’성희롱’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냥 함께 킬킬거렸다. 좀 걸걸한 원로 C여사 같은 분은 오히려 ”야, 땡초(그이의 승명이 일초였다)야, 입 못 닫아? 확 찢어버릴라” 하며 야단을  치곤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문단 원로인 그분의 한 마디에 찔끔해서 웃음을 멈추곤 했었다. 말하자면 자리에 ’어른’이 있었기에 더 이상의 말썽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헌데, 그 후 EN선생 자신이 어른(?)이 되고, 특히 문학보다는 정치꾼으로 앞장서 나대기 시작하고부터는 일탈이 좀 더 심해지지 않았었나 싶다. 더구나 소위 ’노벨상’에 입맛을 다시며 나름대로 노력을 했는데도 잘 풀리진 않았고, 또한 당초 본인의 심성과는 거리가 멀면서도, 속물적 출세를 위해 뛰어든 정치판 이념 갈등에 대한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엉뚱하게 애매한 문단 여 제자들에게 전가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마치 교수직에 있는 학자들이 편한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면 가끔 ’개 막나니’짓을 마다하지 않듯이...그에게 문단은 친정이니까.

 

노벨 문학상? 금번에 누군가가 ”염병하네. 그거 뭐 ’자위문학상’이여? 문학이 무슨 성추행 뒷물인가” 하고 통렬하게 비꼬았다. 언젠가 소설가 김영하는 한 방송 토크쇼에서 노벨문학상에 대한 감상을 점잖게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나라에는 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없는가. 이제 그런 말 그만할 때도 됐는데...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발전하다 보니 지적으로도 세계의 시선을 끌었으면 좋겠는데...그게 뭘까 생각다보니 가장 만만하게 뵈는 게 ’노벨문학상’인거에요. 한국 작가들이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처럼 따오면 좋을 텐데 하는 거죠. 그런데 문학은 무대위의 유희나 스포츠 경쟁의 도구가 아니거든요. 메달을 따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는 없어요.” 했다.

 

솔직히 한글 독자를 한글로 감동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정서란 언어에서 시작되는데, 이 언어는 인간이 세계와 마주하는 창문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유럽 중심의 언어관을 가진 세계인을 겨냥해 한국어 시 몇 줄로 로 감동시키는 일은 어렵다. 그들의 ’보편적 가치’란 것은 한국의 정서와 다르기 때문이다. 창문의 모양과 색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기 마련이 아닌가.

 

김영하의 말이 이어진다.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고은의 시 번역을 보면 그 괴리가 두드러진다. 고은의 ”어느 전기”란 시를 소개한다. // “밤은 나의 조국이었다 / 그런 밤에 금지된 모국어가 / 아무도 몰래 잠든 몸속에서 두런거렸다 / 해방이 왔다 / 모국어가 찬란했다”를 영어로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 “night was my fatherland / In those nights my forbidden mother tongue/ murmured, unnoticed by any, inside my sleeping body / Liberation came/ My mother tongue was splendid.” // 글쎄...형편없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고은의 문장에서 여운처럼 남는 힘이 번역본에서는 실종됐다고 했다.

 

번역도 하나의 창작이다. 한국어의 문장 세계가 다른 언어의 시스템 안에서 바뀌는 과정에서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 김영하는 ”이제 우리나라가 이 정도 성장했으면 해외 문학상에 연연하지 말고 문학 자체를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제는 문학상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그냥 ’문학’을 즐기자. 그리고 우선 더 많은 책을 읽자. 찾아보면 정말 좋은 작가와 작품이 많다. 더하여 꾸준히 쓰자. 좋은 작가의 작품은 하나의 멋진 소우주다. 개별적인 소우주가 한데 모이면 나의 세계가 넓어진다. 내 세계가 넓어지면 ’문학상’은 자연히 따라온다. *

 

손용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