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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상칼럼

 

'광복절'엔 아파야 한다

 

지난 5백년간 우리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아마 1580년쯤 태어나 1650년까지를 살았던 약 70년간의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10대에 임진왜란을, 40대에 정묘호란을, 5-60대에 병자호란을 맞았다. 기록에 남아 있는 당시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굶주림이 만연하고 역병까지 겹쳐 대부분 죽고 백 명에 한 명꼴로 살아남았다고 쓰고 있다. 부모 자식까지도 서로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러 죽은 사람의 뼈가 잡초처럼 드러나 있었다'고 그때의 참상을 기록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이다. 인조실록에 보면 후금 군대가 철수하면서 백성을 어육으로 만들고 수만 명을 잡아가서 노예로 팔았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살기 어려웠던 시기는 아마도 조선이 망하기 직전인 19세기 후반일 것이다. 그때도 중국과 일본이 들어와 나라를 도륙 내었다. 일본군이 동학혁명 농민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계곡과 산마루는 농민 시체로 하얗게 덮였고, 개천은 여러 날 동안 핏물이 흘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우리 민족의 수난사는 6·25 전쟁을 비롯해 수없이 많다. 그런데도 참으로 부끄럽게 이들 수난사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르고 우리는 내부에서 서로 편을 갈라 열심히 싸우다가 모조리 당했다.

 며칠 전이 광복절이었다. 나라 안팎 사정이 수상하게 흘러가기에 광복절을 맞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하지만 우리는 국내는 물론 해외 각 공관, 모든 동포단체들이 함께 모여 태극기를 흔들고 그 뜻 깊음을 되새겼다. 왜냐면 광복절은 나라를 잃고 떠돌던 망국(亡國)의 백성이 나라를 되찾고 어엿한 나라의 국민으로 재출발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우리 조국은 100년 전 잠시나마 지도에서 사라졌던 나라였다. 그때 우리 국민은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나라를 남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치욕의 역사를 생각하면 우리는 매년의 광복절이 감개무량(感慨無量)할 수만은 없어야 한다. 오히려 통절(痛切)한 자기반성이 함께 따라야 마땅하다. 그래서 광복절에는 고난절(苦難節)의 의미가 보태져야만 진정한 ‘광복’의 의미도 깊어진다.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될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그 이치를 깨닫고 뼈저리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왜냐면 한 번 일어났던 일은 또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로 보면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기에 독야청청(獨也靑靑)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누구와 손잡거나 어느 편(便)에 설 수밖에 없었다. 중국 편에 섰던 수백 년, 일본에 인질로 잡혔던 수십 년 우리는 불우했고 가난했다. 해방 후 중국과 일본이 고개 숙인 사이, 그나마 미국의 인도로 세계로 나온 우리는 지난 70여 년 처음으로 잘살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불행하게도 이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국제사회의 냉혹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 한반도의 운명이 또 다시 우리가 아니라 남에 의해 좌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칫하면 미.일이 뭉쳐 우리를 ‘왕따’시킬 징후도 보이고 있다. 과거처럼 미국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도 우리는 안보 불감증에다가 이념 갈등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옛날처럼 쌈박 질만 하고 있다. 차제에 이러한 역사 반복의 이치를 모르고 뼈저린 반성이 없으면, 역사는 무늬만 바뀔 뿐 우리에게 또 다시 ‘노예’의 굴레를 덧씌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