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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상 칼럼 / 짧은 글 깊은 생각

 

`리슨(Listen)과 히어(Hear)'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미덕이 없어진 것 같다. 가끔 사람을 만나 세상 얘기를 하다보면, 대체로 상대방의 말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보려는 생각은커녕 논리도 없이 엉뚱하게 자기주장(主張)만 앞세우는 사람을 왕왕 본다. 이럴 땐 적어도 사고(思考)가 정상적인 상대방에겐 그 시간이 완전히 딴 세상에 온 것 같아 적이 황당해지기도 한다. 

 경청한다는 것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다. 자기주장(主張)만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다. 동서양의 고전 경구(警句)라 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나 ‘탈무드’ 또는 공맹(孔孟)의 어록에서도 ‘듣는 마음’을 곧 경청(傾聽)이라 했고, 그래서 경청(傾聽)이라 하면 ‘귀를 기울여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리슨(listen)이다. 그것도 건성건성 듣는(hear)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듣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듣기 잘하는 사람’은 상대의 호감을 얻을 수 있고 어려움을 해결하는 열쇠 역할로만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한자로 풀어도 의미 심상하다. ‘듣는 다’는 의미의 청(聽)은 ‘왕의 귀(耳+王)로 듣고, 열개의 눈(十+目)으로 보고, 하나의 마음(一+心)으로 대하고 듣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왕의 귀로 듣고, 열개의 눈으로 보고, 하나의 마음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의 반대말은 ‘딴청’이라고 하는데, 이는 동문서답(東問西答)을 말한다. 즉. 나는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 간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은 항상 소통(疏通)이 문제라고 한다.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일이다. 당연히 대화하지 않으니 소통이 안 되고 정보공유(情報共有)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언비어(流言蜚語)가 생겨나는 것이고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즉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 안 되니 의미공유(意味共有)도 안 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조국을 보면, 과거의 것을 가지고 지금을 재단(裁斷) 하려 한다. 10년 전 일들을 리바이블 하여 언필칭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지금을 재량(裁量)하자는 것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해 가고 나라의 안보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는데, 이를 해결할 생각은 못하고 엉뚱한 짓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더욱 한심스런 것은 ‘괴담을 듣는 귀는 무한대로 진화하는 반면 진실을 듣는 귀는 갈수록 퇴화’되고 있는 일부 국민들의 부화뇌동도 문제다. 

 청컨대, 이제 제발 정신 차려야 한다. 나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집안 쌈으로 이래서야 되겠는가? 그러려면 우선 무엇보다 권위의식부터 버려야 한다. 아니, 권위는 지키되 ‘권위의식’은 버려야 한다. 권위는 부단히 노력하여 정상(頂上)을 지키는 것이지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위와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은 우선 사명감으로 일해야 하고 먼저 공익(共益)을 생각해야 한다. 임진왜란 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며 국난을 막아내고 통절하게 순국한 이순신 장군의 구국(救國)에 불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옛말에 ‘죽을 때 철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다. 모두가 열심히 '듣는 연습'부터 하자. 그럼으로써 죽기 전에 철이 들도록 히어(hear)만 하지 말고 리슨(listen)을 하자. ’진실을 듣는 귀‘가 없는 사람에겐 결코 밝은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