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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용상 칼럼 / 짧은 글 깊은 생각 

 

‘삼분인사 칠분천’ (三分人事 七分天)

 

삼분인사 칠분천(三分人事 七分天)’이란 말이 있다. 18c 청나라 시인 조익(趙翼)이라는 분의 시에 있다는 구절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30%고, 나머지 70%는 하늘이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말로 운칠기삼(運七技三), 또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도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할 도리를 다한 후 모든 결과는 운명에 맡긴다는 뜻이다, 결국 사람이 혼자서 열심히 살았다고는 하나 그 결과는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라는 희곡이 ‘기다림’을 뜻하듯이 인생살이도 기다림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엄마의 품을 찾는 아기로부터 병상에서 퇴원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병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늘 뭔가를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일테면 낯선 이국(異國)에서 돈 벌겠다고 일하러 간 기러기 남편이나, 먼 바다 저편으로 고기잡이 떠난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기다림은 독수공방 긴긴 밤을 홀로 지새우게 되는 고통을 갖게 된다. 혹시 바람이라도 났을까, 사고는 안 났을까...마음 졸이며 이제나 저제나 소식 한자 기다리는 기다림은 속이 타들어가는 기다림이다. 

 

그런가 하면, 출근 버스를 기다리거나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아침 후엔 또 점심을 기다리는 일상의 길들여진 연속성 기다림, 또는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연인을 끝까지 기다리는 애틋한 사랑의 기다림도 있다. 면사포 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신부, 달력에 표시를 하면서 제대 날짜를 기다리는 제대 말년의 병사, 감방에서 형기를 채우면서 자유의 날을 기다리는 수인(囚人)...이런 특별한 기다림도 역시 기다림이다. 
그래서 기다림은 욕망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늘 뭔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욕망’속에 살고 있다. 허나, 아무 계획 없는 조급한 기다림은 사람의 마음까지 병들게 한다. 그래서 안타깝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를 지나 가나안 복지(福地)에 들어가기까지 40년이란 오랜 세월을 기다렸고, 인도의 타지마할 능묘는 수십 년이 걸려 마침내 완성되었다고 했다. 따라서 무모하고 조급한 욕망은 나머지 중대사를 그르치기 마련이다. 왜일까? 매사를 투명하지 못하게 몰래 도모하고 그 실과(實果)를 패거리끼리만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코 하늘이 돕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막을 비방(秘方)은 있다. 
바로 매사를 당당하게 더불어 도모하는 것이다.
학자들이 쥐를 가지고 연구를 해본 결과에 따르면 한 마리씩 쥐를 따로 살게 했더니 600일 만에 모두 죽었다고 한다. 5마리씩 살게 하니까 732일을 살았고, 거기에다 사육사가 함께 하며 가끔 놀아주었더니 900일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렇듯, 혼자만의 교만으로 자태를 뽐내는 한 송이 꽃보다 들꽃이 더 아름다운 건 그들은 함께 어깨를 맞대고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또한 혼자 바쁘게 기어 다니는 개미보다 줄지어 행진하는 개미가 더 아름다운 건 그들에겐 질서가 있기 때문이고, 정물화보다 풍경화가 더 아름다운 건 그 속엔 너와 나,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근간 나라가 몹시 어지럽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평창 올림픽이 끝나면 혹 뭔 일이 있을까, 혹 나라의 정체(政體)가 달라질까 우려하며 각자 ‘뭔가’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허나, 이러한 기다림만으로는 자칫 실로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하므로 반드시 미리 막아야 한다. 

이제 우리에겐 작은 ‘뭉침’이 필요하다. 소리만 지르면서 정작 모습은 숨기고 우물쭈물 기다리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하지말자. 최소한 ‘삼분(三分)’의 행동만이라도 정정당당 드러내자. 그래서 내 조국의 잘못된 환부(患部)부터 함께 도려내는 이웃 만들기를 시작하자. ‘더불어 숲’의 정신으로 함께 투쟁하며 너른 나무그늘 안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 그리고 칠분천(七分天), 대천명(待天命)하자. 그러면 나라는 반드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손용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