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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키아벨리를 생각한다

2018.06.08 10:28

KTN_WEB 조회 수:134

마키아벨리를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몹시 혼미(昏迷)하다. 쇠(衰)하는 기운이 역력하다. 법치(法治)는 개가 물어갔고 나라를 좀먹는 종북 좌파들은 기고만장이다. 국가시스템 곳곳에서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역사엔, 망하기 전에 정신 차렸으면 망하지 않았을 것을 내부 쌈질 때문에 망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임(壬) 호(胡) 양난이 그랬고 일제 36년이 그랬다. 혼미할 때 위기를 느끼고 대비하는, 이른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실천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부의 적이 국가를 좀먹고 있으니, 훗날 외부의 적(북 정권)이 이 나라를 말아먹는 일은 여반장(如反掌)일 것이다. 민중의 몽매함을 개탄할 뿐이다. 그럼, 나라를 치유하는 데는 대체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5백여 년 전 피렌체의 마키아벨리(1469~1527)가 떠오른다.

 

당시의 유럽 사회를 보면, 프랑스와 독일이 한 발 앞서서 안정된 통일국가로 발전하고 있는데 비해, 이태리는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많은 도시국가(바티칸,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베네치아, 제노바)들이 세력다툼을 하며 혼돈의 분열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한다. 꼭 지금의 대한민국 같다.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은, 당시 조국 피렌체를 구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메디치가(家)의 군주 로렌초(Lorenzo de Medici)에게 헌정된 것이라고 한다, 총 26장으로 되어있다. 책을 일별하면, 우리가 꼭 귀담아 들어야 할 필수적 지침 같은 주장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제3장> : 로마인이 어떻게 미래를 대비하고 어떻게 고난을 피해갔나? / 의사들은 어떤 질병이든 초기에는 치료하기 쉽지만 진단하기가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진단하기는 쉬우나 치료하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이는 문제의 조기발견과 유비무환(有備無患)을 말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마찬가지. 로마 천년의 역사는 늘 미래 유비(有備)로 이뤄졌다고 한다.

 

 <제15장> : 스스로를 지키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서도 안 되며, 필요에 따라서는 악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 매사에 늘 선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선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반드시 몰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에 따라 ‘필요악’도 과감히 행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다만, 그  ‘필요악’이 훗날 더 큰 진짜 악행으로 변질되어 폭군이 된다면 현명한 군주가 아니다.
 

<제17장> : 군주의 잔인함과 인자함에 대하여. / 인자함이 지나쳐 혼란을 초래하는 군주보다는, 잔인해보일 정도로 엄격한 군주가 개인에게는 나쁠지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더 이롭다. 지나친 관대함 때문에 사회가 무질서하게 되는 상태보다는 소수를 본보기로 처벌함으로써 질서를 바로잡는 군주가 훨씬 더 인자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나친 관대함을 베푼 군주는 온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만, 소수를 처벌하는 군주는 특정 개인에게만 영향을 줄뿐이기 때문이다.
 최근 필리핀의 <두테르테>가 이렇게 하고 있다. 마약범죄 소탕을 위해  ‘모든 마약사범은 죽여도 좋다’는 강경책을 펴고 있다. 박정희 시절의 비인권적  ‘긴급조치 9호’와 전두환 때의 “삼청교육대” 가 그와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조치들을 결코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허나 이것은 공동체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필요악’이라는 얘기다. 즉, 인간에게 제한 없는 자유를 주면 도덕 질서 자유의 가치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당시 그 같은 조치들이 시행되고 있을 때, 적어도 그 때만큼은 사회 기강과 경제 질서가 바로 섰었다.
 

덧붙여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백성들의 경멸을 받는 것은, 변덕스럽고 경박 나약하거나 비겁하고 결단력 없는 모습을 보일 때다”라고 충고했다. 백번 지당하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인기영합’을 위해 일부  ‘좌익 좀비’ 일당들을 놔먹였다. 그러자 그들은 그 기회를 틈타 나라를 찬탈했고, ‘적폐청산’이란 미명으로 지금 온 백성에게 전 정권 이상으로 폐해를 끼치고 있다. 안보, 경제, 교육, 문화, 도덕 등 전 분야에 걸쳐 국가의 정체성을 파괴시키고 있다.
 

이제 응징의 칼을 빼들어야 한다. 나라를 훔친 자들이 악의 씨앗을 파종하여 또 다시 세상을 갈아엎으려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진짜 국민된 자들은 이제 늦었지만, ‘가래’를 들고 잡초를 뿌리째 뽑아야 한다. 이는 정의로운 과업이며 어쩌면  ‘전쟁’으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피하지 말자. 그것을 삼간 것이 오늘의 불행을 불렀다. 제거하지 못하고 번식하게 한 것은 그들의 역사적 과오였다. *
 

손용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