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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유석찬

2018.11.30 10:36

편집국1 조회 수: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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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찬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다. 3년전 그가 한인회장으로 동포사회에 등장했을 때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역대 한인회장들이 그렇듯이 그저 사는게 심심하거나, 색다른 명함이 필요한 사람이려니 했다. 마땅한 후보감도 없는 상태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이겠거니 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한인회장이라는 타이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누가 하든 큰 차이가 없을 터였다. 그저 돈 좀 쓰면서 형식적인 연례행사에 얼굴 내밀고 마이크 잡고 한마디 하고… 누가 한인회를 이끌던 동포사회는 한인회와 상관없이 이전처럼 굴러갈 것이었다. 오랜 세월 늘 그래왔듯이. 
역대 한인회장들의 노고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동포사회에서 차지하는 한인회의 위상이 초라했고, 심할 때는 격리돼 있다시피 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체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한인회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슨 커다란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보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의 개인 시간을 쪼개 자신의 사비를 써가며 봉사하는 자리일 뿐이다. 잘하고 못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다. 

지금도 좀 그렇긴 하지만 오랜 세월 나는 현장을 뛰지 않았다. 그저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선 기자가 물고 오는 기사에 빨간줄이나 빡빡 긋고 있었다. 
유석찬이라는 사람이 동포사회에 데뷰했던 3년전 쯤에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내 앞으로 오는 기사들 속에 유석찬이라는 이름이 있고는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유석찬이라는 이름이 반복되면서 언젠가부터 이 이름을 눈여겨 보게 됐다. 한인회장으로서 그가 하는 일들을 접하고 행사장에서 그가 하는 말들을 눈으로 새겨 보면서 그의 이름은 점차 나에게 ‘꽃’이 되었다.

그는 집권(?) 3년동안 많은 일을 했다. 달라스의 주요 행사로 자리 잡은 코리안페스티벌, 한인정치력 신장을 위한 풀뿌리 운동, 2세 한인들의 내일을 위한 장학금 지급, 캐롤톤 한인들의 치안을 위한 캐롤톤 경찰 소방관 자녀 장학금 지급, 미주 한인의 날 행사 퍼레이드… 
그가 이런 일들을 어떻게 진행했는지는 보름전 열렸던 코리안페스티벌이 말해준다. 일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계획단계에서는 그림을 크게 그렸고 실행단계에서는 디테일에 강했다. 동포사회에 대한 뜨거운 애정, 맡은 일을 제대로 하겠다는 공인으로서의 책임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의 업무는 달라스에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해 텍사스 남쪽에 폭우가 왔을 때 수재로 고통받는 휴스턴 동포들에게 달려가 위로의 성금을 전달하고 휴스턴 동포사회와의 유대를 끈끈하게 다졌다. 그 우정은 휴스턴 동포들의 달라스 코리안페스티발 후원으로 돌아왔다. 유 회장은 2017년 12월 오원성 부회장과 함께 한국의 외교부와 국회를 방문해 주요인사들을 만나고 달라스출장소의 총영사관 승격 운동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일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일을,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스스로 만들고 가꾸면서 달라스 한인 역사에 새로운 기념비를 세웠다. 그가 한 많은 일들에는 비용이 들었고, 그 적지 않은 비용을 그는 내색없이 스스로 감당했다. 

유석찬 달라스 한인회장이 임기를 1년 앞두고 사임했다. 유 회장은 28일(수) 저녁 달라스 한인문화센터에서 열린 한인회 이사회에서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1년만 더’를 정중히 요구한 사람도 있었지만 유 회장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이사회는 유 회장의 사임서를 받아들였다.
이날 이사회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러나 유 회장의 사임발표에 놀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의 이날 발언은 돌연한 것도, 전격적인 것도 아니었다. 이미 예고돼 있었다. 1년 전 첫 번째 임기를 마친 그는 더 이상 한인회장을 계속할 뜻이 없음을 밝혔었다. 당시 유회장은 이사들의 거듭된 ‘커튼콜’에 ‘그럼 1년만 더’로 ‘앵콜’을 받아들였고, 이제 그 약속된 시간이 와서 ‘무대’를 떠나게 된 것이다.

“유석찬 회장의 훌륭한 리더십으로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달라스 한인회 이사장이라는 직책이 자랑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하면 할 수 있다는 위대함을 세상 밖으로 보여줬습니다”
28일 이사회에서, 모친의 병환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정창수 이사장은 황철현 선임이사가  대독한 인사말을 통해 유 회장과 함께 했던 지난 3년간의 세월을 회고했다. 정 이사장이 느꼈던 그 자부심은 달라스 동포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지난 3년동안 우리, 달라스 한인들의 위상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음을 느낀다. 그 중심에 한인회가 있었음을, 유석찬이라는 리더가 있었음을 안다.

달라스 한인회는 내년으로 50주년을 맞는다. 50년 달라스 한인회의 역사는 유석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동포사회는 다음 회장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유 회장이 한인회장의 역할에 대한 모범답안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답안이 일반 동포들의 눈에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위축될 필요는 없다. 누구나 유회장처럼 일을 할 수는 없다. 동포들도 유회장을 추억하며 모든 일을 그와 비교해서는 안된다. 그는 그저 유별났던 ‘돌연변이’였을 뿐이다.
동포사회의 수준이 '후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능력과 양식과 진정성을 갖춘 리더는 다른 어느 커뮤니티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인회장의 바통은 일단 박명희 부회장에게 넘어갔다. 많은 동포들은 그녀가 ‘물방울 장애우’ 창립부터 1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포사회에서 묵묵히 봉사해 왔음을 안다. 
그녀가 유 회장의 뒤를 이었다는 점은 단점이기도 하고 장점이기도 하다. 유회장과 비교된다는 점에서 단점이고 한인회의 위상이 높아진 탓에 동포들과의 소통이 쉬워졌다는 점에서 장점이다.  
겁(?)내지 말고 자신이 맡은 길을 당당하게 가길 바란다. KTN은 그녀의 건투를 응원할 것이다.

 

<사족> 유 회장은 사임 이유로 개인적인 사정을 들었다. 그는 이사회 후 사석에서 그 개인적인 이유를 밝혔다. 
유 회장에 따르면 많은 한인들이 종사하고 있는 북텍사스 뷰티서플라이업계는 지금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아틀랜타와 플로리다를 정복하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는 중동상인들이 텍사스로 진군해 오고 있다. 
유 회장은 “우리 한인들끼리 이익을 나눠먹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다른 민족에게 우리의 생활터전을 내주는 것은 다른 문제”라면서 “이제 장수의 갑옷을 입고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 회장은 북텍사스에서 가장 큰 뷰티서플라이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서봉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