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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봉주 칼럼

2019.02.01 10:46

편집국1 조회 수:18

틀딱

 

크리스마스 언저리였던가, 지난 연말 아들들의 선물을 사러 베스트바이에 갔었다. 다 큰 아이들에게 아무래도 디지털 관련 제품이 먹힐 것 같았다. 매장을 두 번 돌다가 ‘무지’를 새삼 깨달았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용도와 기능을 이해해도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없었다. 세상의 퇴물이 돼가고 있는 기분을 곱씹으며 결국 빈손으로 나왔다. 선물은 여느때처럼 현금으로 대신했다. 세상에 가장 힘든게 누구를 위한 선물을 사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고 우울한 일이기도 하다. 몸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면서 욕망에서 자유롭게 되는 면이 좋지만, 세상의 빠른 흐름에 적응하기 어려운 면에서는 난감하다. 

변화하는 것이 디지털 세상뿐만은 아니다. 세상의 환경이 바뀌면 사람의 생각도, 가치관도 바뀐다.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노인들과 같을 수 없고, 옛 시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새 시대를 이끄는 사람들의 생각과 같을 수 없다. 세대 차이는 불가피하다. 요즘처럼 환경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는 더 그렇다. 

언젠가 한국의 한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커피를 선보이면서 실험을 했다. 두 개의 커피를 준비했다. 한 커피 앞에는 2천원짜리, 또 다른 커피 앞에는 4천원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실험에 참가한 2~30대의 두 여성에게 어떤게 더 맛있냐고 물었다. 한 여성이 답했다. 
“4천원짜리 커피가 맘에 들어요” 
그녀가 이유를 설명했다.  
“2천원짜리는 신맛이 강한 것 같은데 4천원짜리는 커피향 자체에서 나는 원두향이 좀더 깊게 나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여성도 4천원짜리를 선택했다. 그녀 역시 이유를 자신있게 말했다.
“부드럽거나 향이 오래가요. 내가 입맛이 까다로워서 그런지 쓴 맛이 조금 덜해서 시럽이나 설탕을 안 섞어 먹어도 될 만큼 딱 알맞은 것 같아요.”
실험에 사용된 이 두 개의 커피는 그러나 같은 커피였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김대식 교수의 ‘뇌, 현실, 그리고 인공지능’이라는 강의의 한 부분이다.
뇌과학자이며 인공지능 전문가로 알려진 김대식 교수의 해석이 흥미롭다. 김 교수는 이 실험에 대해 “뇌가 해석을 한다”고 진단한다. 혀는 두 개의 커피를, 그 맛을 똑같이 느끼지만 ‘비싼게 좋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는 뇌가 혀로부터 오는 자극을 자신이 갖고 있는 선입관에 맞춰 재해석한다는 것이다. 위 두 여성의 예를 보면 결국 뇌는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런저런 거짓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의 이런 특성을 전문용어로는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고 한다.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뜻이다. 요즘 미국이나 한국에서 횡행하고 있는 가짜뉴스의 배경이기도 하다. 언론들의 팩트 체크가 이어져도 사람들은 자신의 ‘편향’을 고집한다.

한번 세팅된 뇌는 좀처럼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 위의 실험처럼 자신의 오감으로 보고 만지고 느낀 것들도 믿지 못하고 제멋대로 진실을 호도한다. 직접 체감하기 어려운 ‘개념’의 세계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치나 종교를 대화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아무리 합리적인 주장을 펼쳐도 상대방의 뇌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은 환경에 좌우된다. 늑대의 무리 속에서 자라난 아기는 늑대로 자란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사람이 되고 짐승으로 대하면 짐승이 된다는 말도 있다.
하여 사람은 그 시대를 뛰어넘기 힘들다. 우리 머리 속에 들어와서 이미 우리 몸의 일부가 된 생각들은 우리가 살아왔던 세월의 흔적이다. 우리가 겪어 왔던 시대의 편린이다. 우리의 삶이 ‘후진’ 시대를 거쳐왔다면, 우리가 전 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살아왔다면, 우리 또한 그 시대의 오물과 별개일 수 없다. 

나이가 ‘벼슬’인 시대는 지났다. 부모의 어린 시절이 자식의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그래서 부모의 경험과 경륜이 자식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로 역할하던 그런 시대는 이미 끝났다. 
세상은 현기증 날 정도로 급변하고 있고,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 새로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낡은 사고로 돌처럼 굳어진 그들의 뇌에 신세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별로 없다.
나이가 들어도 공부가 필요하다. 생각이라는 ‘골방'의 문을 활짝 열고 새 시대의 바람으로 환기를 시켜야 한다. ‘골방' 곳곳에 켜켜이 쌓인 낡은 먼지들을 털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성찰없이, 노인들이 무리를 지어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하면 젊은이들로부터 ‘틀딱’ 소리 듣기가 십상이다. 노인을 비하하는 말로 틀니를 끼고 딱딱거린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맞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새 노인의 문턱에 성큼 다가섰다.

<서봉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