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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용상 칼럼 / 짧은 글 깊은 생각  

 

‘백각이 불여일행 (百覺而 不如一行)’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며 정치인이었던 맹사성(孟思誠:1360-1438)과 무명선사와의 일화 한 토막ㅡ고려 말 명장 최영의 손녀 사위였던 맹사성은 황희, 윤회 등과 함께 세종 대에 재상을 지냈다. 26세 나이에 문과에 급제 춘추관검열이 되었고 이후 이조참판, 예조판서, 호조판서 등 여러 벼슬을 거치며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던 뛰어난 인물이다. 역사적으로 그는 인품이 훌륭해 존경받았던 인물로 전해지지만, 집안 좋고 머리가 뛰어나 일찍 벼슬을 얻었던 그도 젊은 시절에는 자만심 가득한 기고만장한 청년이었다.

 

어느 날 그가 파주 군수가 되어 그곳 산골에 무명선사라는 훌륭한 스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스님을 만난 맹사성이 군수로서의 삶의 좌우명을 뭐라 삼아야할지 물었다. 무명선사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하시라고 했다. 죄짓지 말고 착한 일 많이 하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러자 맹사성은 발끈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말을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주느냐는 거였다. 그러자 노 선사는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 不如一見)이요, 백견이 불여일각(百見而 不如一覺)이며 백각이 불여일행(百覺而 不如一行)’이라는 충언으로 답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고,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깨우침이 나으며, 백번 깨우침보다 한번 행함이 낫다는 말이다.

 

이에 머쓱해진 맹사성이 큰 절을 올린 후 나오려 하자 노승이 차 한 잔을 권했다. 하더니 그의 찻잔 위로 주전자를 들어 물이 흘러넘치도록 차를 따르는 게 아닌가. 놀란 맹사성이 “스님, 차가 넘쳐 방바닥이 젖습니다”라며 주의를 환기시키자 무명선사는 “물이 넘쳐 방을 망치는 것은 보면서 작은 머리에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까?”라며 다시 한 번 은근히 꾸짖었다고 한다.부끄러움에 허둥지둥 방을 나서던 맹사성이 낮은 문틀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노승이 다시 한마디 던졌다. “고개를 낮게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고 했단다.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글이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한 지인의 얘기가 떠오른다. 그는 서울역에서 KTX 탑승을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여행 가방이 계단의 중간에 걸리는 바람에 당황했다고 했다. 양손에는 짐이 들려있어 그야말로 앞으로 고꾸라질까 진퇴양난에 처해 있는데, 바로 뒤에 서 있는 청년 둘이 그 모습을 그냥 멀뚱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것. 아래로 내려올 때까지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도 두 청년 중 어느 한 사람도 도와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는 얘기였다. 후에 일행에게 이야기 했더니 ‘나도, 나도’ 하면서 각자 자기들이 겪은, 젊은이들의 싸늘한 방관에 관한 경험담을 이구동성 풀어놓았다면서 요즘 유행하는 다들 ‘미투’였다고 했다.

 

그때 그는 순간 슬하의 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했다. 내 아이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혹시 내 아이들도 기본이 덜 된, 멀뚱멀뚱 놀면서 이기적으로 입만 까진 젊은 부류나 아닐까...겁이 덜컥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이 무명선사와의 차 한 잔의 자리를 알선하고 싶었다고 썼다. 만약 주변에 그런 ‘스님’을 찾을 수 없다면, 그들보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부모의 자격으로서도 아이들 잔에 차를 따라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하면서. 그렇다. 아무리 흔한 얘기라도, 백번의 깨달음보다 한 번의 행함이 귀한 법이다. 하지만 먼저 깨달음이 있어야 행함도 있을 것이다. 이는 어른들이 일깨워야 한다.

경칩(驚蟄)이 낼 모레, 개구리가 잠을 깨고 봄이 왔다고 한다. 헌데, 며칠 전 서울시장이 마치 자기 쌈지 돈인 듯 빈들대는 청년실업자(?) 7천명에게 아무 명분 없이 ‘청년수당’을 퍼준다는 보도에 속이 뒤집혔다. 왜 주는데? 봄이 왔으면 최소한 시내 공원 청소라도 시키고 돈을 줘야지...’꽁돈’ 주면 누군들 싫어할까. 앞으로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하겠는가? 멀쩡한 젊은이 그냥 바보 만드는 나라는 처음 봤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듯 그야말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는’ 뭣 같은 세상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