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미술]

미술사 이야기 첫인상

2017.04.25 17:05

KTN 조회 수:56

 

Claude Monet, 'Impression, Sunrise'   Musée Marmottan Monet (미르모랑 모네 미술관), paris

Claude Monet, 'Impression, Sunrise'  

Musée Marmottan Monet (미르모랑 모네 미술관), paris

 

오늘부터 미술사이야기 컬럼을 시작하는 필자는 첫 컬럼의 제목을 인상파 작품 “인상,해돋이”에서 찾았습니다. 첫, 인상 ! 그것이 인상주의의 출발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인상파 화가 중 특히, 모네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 그가 포착해내는 찬란한 빛의 색조가 뿜어내는 화사함 때문일 것입니다. 모네는 평생을 순간적인 빛의 미묘한 변화를 추구하며 그의 평생에 거의 칠십여 년을 빛을 포착하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For me, a landscape does not exist in its own right, since its appearance changes at any moment.” - Claude Monet 모네-

 

모네는 자신의 고향인 노르망디 해안 르아브르 항구의 일출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항구풍경에서 받은 즉흥적인 인상을 순간에 포착해 표현해 낸 작품이 바로 “인상, 해돋이”였습니다. 새벽 안개속에 떠오르고 있는 붉은 태양, 몇 사람이 타고 있는 배 몇 척, 멀리 정박해 있는 배들과 높이 솟아 있는 돛, 태양빛으로 붉어 지고 있는 바다표면의 붉은 색조의 거친 터치는 미완성작처럼 보입니다. 모네는 가능한 빠른 터치로 순식간에 캔버스를 메워 나갔을 것이 상상이 갑니다. 푸르른 바닷가의 색조와 붉게 떠오르는 태양의 색조, 단 두 가지 색조의 농담을 이용하여 새벽녘 어둠을 뚫고 솟아나오는 일출의 장면을 멋들어지게 해석해 표현한 것입니다. 모네는 태양이 가장 붉을 때인 해돋이 순간에 일렁이는 바닷물에 반사되는 빛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을 화폭에 담아 냈던 것입니다. 

 

모네 이외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대상의 객관적이고 세밀한 묘사는 관심밖에 있었고,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대상에서 받은 순간적인 첫 인상을 그대로 붙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왔고 모든 작품을 현장에서 완성해내려 했습니다. 

인상주의의 이러한 시도는 두 가지 시대적 요인이 있었습니다. 사진기의 발명과 일본판화의 특이한 시점과 색채의 평면적 표현에 대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19세기 미술인 인상주의는 이러한 위기의식을 강하게 드러 낸 표현법이며 사진의 등장과 관련이 깊습니다

 

1874년 파리에서는 이색 전시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모네는 이 때 자신의 작품 <Impression, Sunrise:인상, 해돋이>를 출품했습니다. 그는 전시 주최측에서 도록을 만들어야 한다며 제목을 요구하자 즉석에서 <인상, 해돋이> 라고 말해 주었다 합니다. 말 그대로 즉흥적인 그림이었기에 만들어낸 제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람회에 들렸던 당대의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모네의 이 작품을 보고 “그림이 걸린 벽의 벽지가 훨씬 더 완성도가 있어 보인다”라고 악담과 비평을 퍼부었습니다. '인상파'라는 말은 이때 모네의 작품을 야유한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 비평사건이 오히려 <인상파>의 기원이 됩니다.

 

인상주의 이전 사조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시기로 모든 대상을 낱낱이 파악하고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표현한 전통에 붙들린 화가들의 작품들이 주류였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에 익숙했던 미술계는 대충 붓질 몇 번으로 완성도 떨어지는 그림을 그려 놓고, 전람회에 내놓은 모네의 그림을 호평하기 어려운 시대 흐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평하는 부류들이 미쳐 깨닫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과정은  모네, 피사로, 시슬레 등 인상파 화가들이 십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에두와르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이 파리 화단을 충격으로 몰아 넣은 이후 몽마르트 근처의 카페에 모여 치열한 토론을 벌이며 회화의 새로운 길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임에는 에밀 졸라를 위시해 문학가, 시인, 비평가들도 합류했었습니다. 사실, 인상파의 태동은 모네이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1870년대 발발한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의 여파로 많은 화가들이 징병대상이 되거나 런던으로 피신하면서 이 모임은 해체 되었지만, 런던으로 건너간 화가들은 영국화가 윌리엄 터너(1789 ~1862)의 작품에서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파리로 돌아왔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화풍을 다시 시도한 것입니다. 그 출발점이 된 것이 바로 1874년의 제 1회 전람회였던 것입니다. 이후 인상파는 파리의 화단을 빠르게 장악해갔고 그들을 향한 비난들은 점차 잠식되어져 갔습니다.

 

인상주의 미술은 1860년대에 발생하여 1870년대에 절정을 이루다가 1890년대에 들어 신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로 분리되었으며 결국 20세기 현대미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조로써 굳건히 자리를 매긴 것입니다.

 

 

글_김윤정 (Michelle Kim), 미술사 연구가

 

 

 

참고: 모네는 ‘인상: 해돋이’를 언제, 어디서 그렸을까?

 

미국 텍사스 주립대 도날드 올슨 천문, 물리학 교수는 ‘인상: 해돋이’와 관련해 알려진 역사적인 사실들과 천문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이 그림이 그려진 정확한 시기와 장소 등을 분석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밝혔다(Sep. 2, 2014). 그의 분석에 따르면, 1872년 11월 13일 오전 7시 35분 순간을 화폭에 담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호텔 3층 방에서 창밖을 보며 그렸을 것으로 추정해 냈다. 그림이 그려진 곳은 프랑스의 오트노르망디 주 센마리팀 데파르트망에 있는 르아브르(Le Havre)항구이다. 1870년대 르아브로 항구의 배치가 그대로 그림 속에 표현되어  있으며, 그가 머무르고 있던 라미라우테 호텔에서 그렸던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그림 속에서 낮게 떠 있는 태양의 각도를 분석하면 알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