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미술]

피카소(1881- 1973)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  - Series II

 

피카소.jpg

 

 

피카소 작품의 개수와 다양성 때문에 많은 미술사가들은 그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각 시기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계속해서 의견이 대립되는 가운데 보편적으로  5단계 - 청색시대, 장미빛시대, 입체주의, 고전주의, 초현실주의 - 시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모방의 천재로 불리우는 피카소는 수많은 모작들을 통해 창작된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서 부터 스페인 최고의 화가인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년~ 1660년 궁정화가)에게 푹 빠져 있던 그는 바르셀로나 미술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탐구했습니다. 피카소는 자신이  존경하던 화가의 “시녀들” 모작을 훗날 75세가 되어서 자신만의 창의적인 세계로 재해석해 냅니다. 

 

벨라즈케즈 “시녀들” 모방 연작 (75세의 피카소)  


피카소3.jpg

▲ 왼쪽- 벨라스케즈(원작), 오른쪽 피카소의  “시녀들” 비교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의 하얀 벽에는 피카소가 주인인 그 곳에 벨라스케스를 모방해 그린 그림이 가득합니다. 

일흔여섯의 피카소는 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 ‘회화에 관한 회화’로 불리는 대작 <시녀들>(Las Meninas)을 그림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다시 그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피카소가 총 58점의 연작을 그리고는 ‘피카소의 시녀들’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여러 달간의 습작이라고 하기엔 강도 높은 시리즈 작품들로써 70대 노(老) 화가의 몰두였습니다. 
실재 있는 사물들의 본질과 사물이 환경에 따라 변하는 - 사람의 시선과 사람의 마음속 관점에 따라 변하는 - 수백개의 형상을 보는 방법을 피카소는 알려 줍니다. 그래서 피카소의 그림을 보다 보면 주변의 인물이나 사물이 새롭게 보여 집니다.

1957년 피카소가 연작으로 그려 낸 <시녀들>은 크기도 색채도 스타일도 각양각색입니다. 녹색,  빨간 색, 검은색 배경으로 화면을 꽉 채운 <시녀들>도 있고, 각각의 인물들이나 시녀들만 쏙 빼내어 그린 작업도 있고, 삼각형과 사각형 등 기하학적인 도형들로 꽉 찬 <시녀들>도 보입니다. 
파괴와 해체의 작업속에 마가리타 공주는 못난이가 됐고, 리얼리즘 화풍의 그림이 마치 심통 난 입체파 화가에 의해 퍼즐처럼 온갖 도형으로 쪼개어져 흩어진 그의 작품은 늘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흩어진 퍼즐 같은 <시녀들> 시리즈는 오히려 하나로 보입니다.

 

게르니카
 

피카소4.jpg

▲ 349 × 776 cm, 137.4 × 305.5 in, 1937,유화, 스페인 마드리드의 소피아 국립 미술관에 소장

 

 

1937년 스페인 게르니카 내전으로 인한 참사가 일어난 날, 하늘에서 영문도 모를 폭탄들이 떨어지며 가족과 치구들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피카소의 조국, 스페인의 참사를 보고 그는 붓을 들었습니다.

비뚤어진 현실 세계의 비극을 컬러가 없는 Blcak and white (흑백)으로 표현했습니다. 수많은 스캐치를 거쳐 잘린 팔, 뒤틀린 몸통, 자리조차 잡지 못한 눈, 코, 입 등을 그려 넣고 블랙, 흰색, 회색 등 어두운 무채색만으로 표현했습니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그림들의 조합이 그의 손으로 합체가 되자 현실 보다 더 생생하게 가슴 아픈 역사의 현실을 전달해 주는 역사책이 되었습니다. 
창에 찔린 말, 부러진 칼, 죽은 아이를 안고 절규하고 있는 고통스런 엄마의 모습은 실제 사진 보다 더 큰 슬픔으로 전달되어 다가옵니다. 게르니카 폭격(스페인어: Bombardeo de Guernica)은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내전 당시 인민 전선(공화군)의 세력권에 있던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가 나치 독일 콘도르 군단 폭격부대의 폭격을 받은 사건으로, 도시 인구의 ⅓에 달하는 1654명의 사망자, 88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던 참사였습니다. 
이 폭격 사건의 주된 목적은 독일의 폭탄과 전투기의 성능 시험 및 다리의 파괴로, 이 비극에 분노한 피카소가 대작 《게르니카》를 그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