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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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쓰는 달라스 사람들의 일기

 

  삶의 파노라마  

 

토닥토닥 ‘삶을 위로하는 소리

 

주책없이 눈물이 났다. 명줄 실이 튕기면서 낸 작은 소리에 긴장하며 살았던 삶의 균형이 깨졌다. 여린 감성도 아니고 소리에 민감한 것도 아닌데 울컥했다. 작은 동요를 진정하며 눈을 감고 들었다. 작은 몸짓마저 느껴졌다. 온몸이 소리와 색과 분위기까지 품에 안고 있었다. 무대의 조명 색이 바뀔 때마다 마음도 따라 물들었다. 그렇게 가야금 소리와 연주자의 손끝까지 품으며 빠져들었다. 아득한 가야금 소리에 가슴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12현 명주실을 오가며 뜯고 튕기는 가는 손가락이 참 곱다. 그녀는 좁은 오동나무 판에서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발끝이 아닌 손끝으로 이완을 다스리며 소리를 풀어내고 있었다. 조명이 바뀔 때마다 소리는 색을 입고 더 또렷이 제 빛깔을 드러냈다. 손끝도 소리도 한복의 자태마저 아득하고 곱다. 그녀 옆에는 스승이고 롤모델이자 어머니인 문재숙 명인(국가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 명인)이 함께하고 있었다. 모녀가 들려주는 산조와 사랑가는 듣는이의 어깨로 내려와 토닥이며 지친 삶을 위로하는 마음이 되어주었다.

아련한 가야금 소리와 청아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사랑가’는 봄 들녘처럼 풋풋했다. 잔인한 4월의 첫날 거짓말처럼 그들이 한국에서 왔고 화려한 신명의 마당을 펼쳐 보였다. 쉽게 들을 수 없었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세계였다. 23명의 명인 명창들이 펼친 화려한 무대는 뜬금없이 눈물을 자아낼 정도로 분에 넘치게 좋았다. 눈도 귀도 그리고 마음마저 횡재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명성답게 무대에서 당당했고 힘이 있었다. 자기 순서만 채우고 내려가는 그런 부류의 예술인 아니고, 관객의 마음을 헤아리며 삶을 위로하는 따뜻한 정도 있었다. 이국에 살다 보면 고향이 그리운 법이다. 그들은 고운 한복차림으로 고향의 향수를 품고 우리한테 찾아온 봄의 정령같았다.

오늘의 주인공은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명무, 명인, 명창만이 아니다. 객석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같이 호흡한 관객 또한 주인공들이다. 일방적인 공연이란 없다. 함께 호흡하고 즐기는 게 공연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삶의 빗장을 풀고 함께하는 것이 관객의 몫이다. 무대는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즐기면 된다. 무슨 문제를 풀듯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마음의 비장을 풀고 애정의 마음은 열고 느끼는 대로 품에 담으면 된다. 예술은 마음을 치유하는 에너지다. 마음도 생로병사가 있다. 마음도 몸처럼 좋은 기운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게 좋은 소리고 예쁜 색이고 멋진 몸짓이고 익숙한 리듬이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리고 혼자 호강한 거 같아 미안했다. 좋은 공연을 위해 애쓴 이들의 선한 마음에 감사한다. 그들에게 봄 들녘의 향기 좋고 빛깔 좋은 꽃 한 아름 안겨주고 싶다. 달라스의 봄을 싱그럽게 열어준 예술인들에게 고맙다는 마음 전하고 싶다. 오늘은 마음의 경계를 풀고 마냥 취한 날이다. 가락에 취하고, 선율에 취하고, 몸짓에 취하고, 화려한 색채에 취한 날이다. 그리고 귀한 시간 내주고 귀한 재능을 나눈 출연자의 마음에 취한 날이다. *

 

사진, 글 _ 김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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