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노라마

김선하.jpg

 

  사진으로 쓰는 달라스 사람들의 일기  

잠시, 시(詩)었다 가세요.

 

4월이면 푸른 빛으로 온 들녘을 융단처럼 덮는 시골이 있다. 전형적인 유럽의 어느 농촌을 기대로 옮겨다 놓은 곳처럼 정갈하고 멋진 곳이다. 해마다 수십만 명이 귀하게 생긴 꽃을 보려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ENNIS’다. 체코의 이민자들이 주로 정착해 농사를 짓고 사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지만, 봄이면 ‘블루보넷’으로 유명한 곳이다. 달라스 다운타운에서 30분 거리다. 가는 길가에 흐트러지게 핀 야생화를 보며 잠시 넋을 잃다 보면 ’엔니스’에 닿는다.

‘Bluebonnet’은 텍사스 주화다. 텍사스의 광활한 들녘을 덮는 봄의 정령이지만, 엔니스의 블루보넷은 격이 다르다. 수백 그루의 꽃이 아니다. 온 들녘을 덮고도 남을 만큼의 남다른 격을 보여준다. 시에서 추천하는 여행코스는 총 3개의 길인데 어느 곳을 선택해도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여행의 색다른 묘미를 즐기려면 샛길을 선택하길 바란다. 시 전체가 블루보넷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는 풍경이 더 위안이 될 수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을 여행하다 보면 블루보넷 만이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다. 덤으로 야생화와 어울리는 동물도 만날 수 있다. 말 그대로 초원 위의 낙원 같은 곳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임과 함께……”살고 싶은 게 우리의 꿈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행은 고사하고 허리 한번 맘 놓고 펼 수 없는 현실에 묻혀간다. 한국의 형제자매들이 벚꽃에 취해 SNS로 행복한 테러를 자행해도 속수무책인 게 우리의 현실이다. ‘봄 소풍’은 고사하고 뒤뜰에 자리 하나를 펼 수 없을 만큼 의미 없게 계절을 소비하고 있다. 생활은 있는데 삶이 없는 이민자의 삶, 그 의미 없는 삶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잠시 쉬며 자연에 기대는 것뿐이다.

김밥은 간식용이 아니라 ‘소풍’용이었다. 김밥 몇 줄 말아 들고 들로 산으로 혹은 강으로 마실가듯 나섰던 조상의 지혜가 담긴 삶의 미학이다.
소풍의 진정한 의미는 들녘의 풍광이 아니라 소풍 전날이 주는 형용할 수 없는 ‘설렘’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소풍’이라는 아련한 추억, 삶을 더욱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드는 시어 같은 단어, 그 추억 놀이에 빠지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이 ‘ENNIS’다. 1년 12달 자연은 두 팔 벌려 우리를 안으려 해도 안길 수 없는 가엾은 이민자들. 삶과 현실의 경계선을 넘을 수 없는 ‘숙명’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는 진정 아닐 것이다.

꽃 밭 위에 놓인 의자는 ‘우리’가 앉을 의자다. 삶의 멀미에서 잠시 내려와 앉을 의자다. 의자에 앉는 순간 지루한 삶이 한편의 시 詩가 될 것이다. 막장 같은 인생도 의자에 앉으면 한편의 시 같은 현실이 되는 게 세상이다. 잠시 쉬는 게 삶의 시詩다. 삶의 중력에서 일탈해 꽃밭에 앉을 수 있는 삶이 진짜 일생을 즐기는 ‘소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야 한다. 그리고 떠나야 한다. *
 

 

사진 글 _ 김선하

 

B036.pdf 다운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