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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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원 바이올리니스트 ( Doctor of Musical Arts - Performance: Music - Violin UNT. Richardson.Plano. Las Colinas 오케스트라 단원 및 객원 연주자)

 

어머니를 위한 현의 노래

 

그녀를 처음 만난 건 ‘Adagio in G minor for Strings and Organ’을 연주할 때였다. 저녁노을처럼 파이프 오르간의 중후한 소리가 예배당을 포근하게 채우고 있었다. 파이프오르간의 위용에 묻혀 현악기의 소리가 점점 아득해졌다. 비가 갠 하늘을 노을이 마음 놓고 물 들리기 시작할 때 조용하던 9대의 현악기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부드러우면서 아찔하게 그리고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오르간을 위한 현악기의 연주는 비 갠 하늘을 수놓은 붉은 융단처럼 듣는이의 마음도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늘 악장의 위치에 앉는다. 바이올린 주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자리고 책임의 자리다. 아무나 앉을 수 없는 만큼 책임도 따른다. 악장은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까지 단원들의 화음을 끌어내는 중책도 맡는다. 작은 연주회는 맨 마지막에 관객을 맞는 것이 악장의 임무다. 그녀는 그날도 맨 마지막에 나와 연주를 하고 제일 먼저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만큼 그녀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두 번의 연주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고 끝났다. 화려한 기교는 없었지만, 파이프오르간과 호흡을 함께한 연주는 오래간만에 듣는훌륭한 연주였다. 

이서원 바이올리니스트가 처음 활을 잡은 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인 8살이었다. 그때 이후로 한 번도 활을 놓지 않았다. 그녀 곁에는 늘 바이올린이 있었고 바이올린 곁에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바이올린으로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노래를 하는 연주자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인디애나 대학원으로 유학올 때도 그리고 UNT에서 박사과정을 함께한 것도 분신같은 바이올린이었다. 때론 악기이지만, 때론 그녀와 함께 인생을 여행하는 동무같은 존재다. 같이하며 만끽한 수많은 갈채와 환희, 그리고 좌절과 아픔도 나누었던 분신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녀는 4개의 현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심근을 떠올린다. 그녀의 인생에서 바이올린보다 먼저 안아준 것은 엄마인 김옥연 여사였다.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음악학원에 들어설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것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힘들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좌절할 때마다 음악보다 더한 사랑을 주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서원의 목표는 엄마의 심금을 울리는 멋진 연주가가 되는 거다. 연주할 때마다 객석에 엄마가 앉아있다는 것을 상상하며 연주를 한다. 자신을 위해 희생을 한 그 모정에 대한 답이다. 4가닥의 현은 단순한 줄이 아니라 어쩌면 그녀를 이끌고 올 곧게 세운 엄마의 질긴 심근인지도 모른다.

악기는 연주자를 닮는다. 아무리 기교로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게 소리다. 첫 음절만 들어도 연주자의 성품이 드러난다. 가장 진실할 때 진실한 소리를 내는 게 악기다. 심금을 울리는 소리는 기교도 화려한 포퍼먼스도 아니다. 마음이다. 연주는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연주자로 오래오래 활동했으면 좋겠다.*
 

사진_글 김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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