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노라마

사진으로 쓰는 달라스 사람들의 일기_ 삶의 파노라마

 "84세 드러머, 희망을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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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천

      (1935서울 생. 한국해양대학 해양과 졸. 해병대위 전역. 대한해운공사 소속 항해사. 달라스해병전우회 회장역임. K 뮤직 드럼 교습생) 

 

 

그는 막 병원에서 퇴원하여 회복 중에 있었다. 열정보다 늘 나이가 문제였다. 한 번도 나이가 열정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요즘 들어 나이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는 게 사실이다. 그의 육체적 나이 84세, 세상 이치를 알고도 넘치는 나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못다 한 꿈'이 남아있다. 그는 2000년 5월 15일에 자서전 [아직 못다 한 꿈]을 펴낸다. 그의 나이 65세 때 일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지금 드럼 스틱을 들고 드럼을 두드린다. 그는 늘 새로운 세상에 도전해왔다. 익숙한 길을 가지 않고 낯설고 힘든 길을 걸어왔다. 어쩌면 그것은 운명처럼 만난 역사적 현장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1961년 5월 16일 혁명군이란 이름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들어간다. 해병대 소위로 혁명군이 된 것이다. 그리고 사선이었던 한강철교를 뚫고 서울로 들어간다. 그것도 선봉장이었고 피가 끓는 26의 나이였다. 그리고 정치판에서 한동안 머뭇거린다. 그는 늘 꿈을 좇는 아이처럼 꿈이 우선이었다. 바다를 그리워 군복을 벗고 정치판을 떠나 그리던 넓은 바다 위에 선다. 1971년 항해사가 되어 꿈에 그리던 5대양 7대륙을 누비며 마도로스의 꿈을 이루고, 1978년 달라스라는 뭍에 닻을 내리고 정착한다. 글로 쓰면 몇 줄의 인생 같지만, 천일야화보다 더 많은 사연을 품어 온 세월이다.

 

아직도 몸에 군인 근육이 남아있는지 어딜 가나 “ 여기 대한민국 해병 장교 출신 있으면 나와 봐!”라는 긍지로 살고 있다. 모든 일에 ‘해병대 장교 출신’이란 부적을 붙이니 못할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를 바로 세우고 올굳게 세상 풍파를 헤치고 오늘에 이룬 힘은 근력이 아니라 '해병대 장교 출신’이란 자존심이었는지 모른다. 살아오는 동안 '해병대 장교 출신’이란 자존심보다 더 위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세월이었다. 그는 고혈압으로 왼쪽 눈을 잃고 귀마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그러나 안 보인다고 못하지 않았고, 안 들린다고 포기하거나 위축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르렀다.

 

잘 안 들리지만, 그는 드럼을 친다. 사지를 이용해야 되기 때문에 더 전투력이 솟는다는 해병대 다운 대답이다. 일주일에 2번 3시간은 혼신의 힘을 다해 두드린다. ‘치매'와 ‘근력’을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은 도전이었다. 그는 이제 또 다른 꿈을 꾼다. 스포트라잇을 받으며 멋진 연주를 하는 것이다. 아마 그 꿈마저 곧 이루어질 것이다. 멋은 공연을 끝내고 손주들이 주는 예쁜 꽃을 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쩌면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황금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가 더 멋져보이고 부렵다.

 

글_김선하 | 사진_김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