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노라마

  [사진으로 쓰는 달라스 사람들의 일기_삶의 파노라마]

"인생 3막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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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신호 
         1947년생. 카메라 수리 전문가. 전 월남참전 유공전우회 달라스지회 회장. K 실용음악 학원 전자 기타 수강생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사람은 삶의 가치를 남들과 다르게 생각한다. 벼랑 끝에 서봤기에 삶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금처럼 풍요를 누리기 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보는 시각이 남다르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1950년 후반에서 1960년 초이다. 이들은 가난과 격변의 시류를 견디며 살았지만, 생사의 경계를 넘지는 않은 세대다. 그러나 1940년과 195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한국의 처절한 민낯을 보고 체험하고 각인하며 살았던 세대다.

 

권신호 씨는 해방둥이는 아니지만, 두 해 늦은 1947년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혼란의 한복판인 대한민국이었다. 그때부터 1988년까지 그곳에 살면서 부침을 거듭하고 생사의 경계에 수없이 서게 된다. 6.25와 월남전쟁이 남다르지 않은 이유가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22살의 나이로 월남의 전쟁터를 누볐던 그에게는 전쟁은 엄청난 충격의 연속이었다. 인간들이 벌여놓은 짓 중에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때 권신호 씨는 카메라와 총을 동시에 메고 전장을 누비는 사단 공보 병이었다. 카메라는 세상에 전장의 참상을 알리는 도구였고 총은 자신을 지키는 도구였다. 생사의 경계에서 셔터를 누르고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방아쇠를 당기던 손은 월남전을 끝으로 삶을 개척하는 억척의 손으로 변한다.

 

삶의 도구였던 손,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투쟁하며 삶을 쉼 없이 보듬어왔던 손이 이제야 비로소 호사를 누리기 시작했다. 1988년 미국에 이민을 오며 카메라 수리 전문가로 제2의 삶을 살았던 그가 인생의 3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30년간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사용했던 손이 이제는 자신을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다.


어색하고 서툴고 계면쩍지만 4막을 위한 피나는 노력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의 인생 극은 제1막 ‘생존.’ 2막 ‘개척’ 3막 ‘꿈’. 그리고 4막은’ 절정’이다. 지금은 4막을 위해 오랜 꿈이었던 악기를 배우는 중이다. 치매와 소일거리로 시작한 배움이 아니다. 4막을 위한 비장의 카드인 것이다. 그의 꿈은 멋진 연주를 제대로 한번 하는 거였다. 지금껏 그것을 애써 숨기고 가족을 위해 살아왔을 뿐이다. 

 

70의 나이에 시작한 3막은 4막을 위한 고난의 과정이다. 4막의 화려한 클라이맥스를 위해 뼈를 깎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굴곡진 인생사를 살아온 내력으로 보면 그냥 하찮은 과정일지 모른다. 조금 서툴고 조금 느리고 조금 생경할 것이다. 그마저 두렵다면 4막은 그냥 희망이고 망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진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93세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보다 23살이나 젊은 청년에 불과하다. 이제는 남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희생의 시간이 온 것이다. 꿈은 끝까지 견디고 꾸준히 준비한 사람만이 누리는 달콤한 미래다. 

 

 그 미완의 미래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아직 70까지 살아보지 못했지만, 더 많은 사연이 펼쳐질 4막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원도 한도 없는 4막을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믿습니다. 

 

글/사진_김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