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노라마

연주자의 길로 가려는 용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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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의 숙명은 연습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내 것이 된다.
그런데 내 것이 되었다고 진정한 음악이 되었다고 볼 순 없다. 음악에는 늘 상대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주는 그래서 힘들고 외로운 것인지 모른다. 아흔의 대가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하고 이제 막 음악의 길로 접어든 초보도 연습한다. 연습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주자의 숙명은 연습이란 결론밖엔 없다.

연주자의 숙명이 연습이기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도 많다. 반복되는 일상에 자아를 가둬놓기 때문이다. 연습실에 틀어박혀 연습만 하다 보니 사회성이 제로에 가까운 음악인이 많다. 어느 감정선을 넘으면 자제를 못 하고 평정심을 잃어버린다. 늘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오류도 범한다.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연주자가 포용과 배려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문제다. 음악이 연습실을 나오면 배려와 포용과 상생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연주는 독주를 제외하고는 늘 화음을 위한 협연이다. 내 음이 다른 사람의 음과 섞이고 융합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연습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용하는 9살 때부터 비올라를 시작했고 지금은 17살이다. 8년을 연습한 셈이다. 어떤 날은 5시간 넘게 어느 날은 겨우 몇 시간을 연습했지만, 그가 쓸 수 있는 시간 대부분을 연습에 투자했다. 그동안 만난 스승도 여럿이다. 주변의 스승부터 명성이 자자한 세계적 대가까지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수많은 연주자와 협연도 경험했다. 그러나 갈 길은 험하고 멀다. 이제 겨우 시작의 선을 넘은 수준일 뿐이다.

용하를 처음 만난 것은 `From the Top` (Nationwide American program and initiative to develop and showcase young classical musicians )에 참가해 Christopher O`Riley 와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Jordan Hall에서 연주를 끝낸 10월의 첫주였다. 큰 무대에 여러 번 서 봐서 그런지 의연했다. 8년이란 세월 동안 수많은 상을 받고 협연을 했지만, 아직은 앳된 청소년이었다. 자아의 형성기에 연습실에 갇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청년은 아니었다. 자신의 음악철학을 말할 때는 철든 어른 같았다. 음악은 연습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경험과 교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 알고 가는 것과 가면서 아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비올라의 음역은 현악기의 딱 중간이다. 어느 쪽에 치우쳐도 협연을 망가뜨릴 수 있는 위치다. 비올라의 존재는 균형을 잡아 전체를 융합하는 것이다. 그게 비올라의 몫이다. 그것처럼 모든 것에는 고유의 몫이 존재한다. 비올라의 몫과 용하의 몫이 따로 있는 법이다. 연습실에 틀어박혀 자아를 키우지 못한 연주자보다 자아가 강한 연주자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위치에 충실한 연주자보다.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큰마음의 연주자로 그리고 대가에게서 기술을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인생과 삶과 철학을 배우는 연주자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올라계의 한 획을 긋는 영감의 음악인으로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사진, 글_김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