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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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남 Charles Park
달라스 우리민족 서로돕기 고문. 달라스 4.19 민주혁명 선양회 회장. 전 달라스 상공회 회장

 

 

   사진으로 쓰는 달라스 사람들의 일기  

 

 

박영남 이야기  ‘흔적과 편린’

 

그의 자서전(박영남 이야기 ‘흔적(痕跡)과 편린(片鱗)’)을 읽으며 숙연해졌다. 한 자 한 자가 꼭 눈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뚜렷하고 선명하다. 때론 핏빛으로 때론 눈물보다 더 진한 짠 맛으로 읽혔다. 80년을 일군 삶의 여정이 한 폭의 파노라마다. 어느 삶이든 지난날을 회생하면 모두가 희로애락의 파노라마겠지만, 그의 삶은 더 어둡고 처연하고 숙연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고 읽게 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서막은 ‘비극’이다. 독립군의 피를 이어받은 그에게 조국은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대신 선혈의 붉은 기억을 각인시켜주었다. 6.25사변으로 선친을 잃었다. 그리고 불의를 보고 의연히 일어섰던 독립군의 후손답게 무능한 독재(4.19)와 군사정권(5.18)과 싸워 잉여의 몸이 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감금된다. 지금 생각하면 삶의 ‘훈장’이지만 그때는 상황이 달랐다. 그가 조국을 위해 희생하며 몸부림쳤던 처연한 싸움의 결과는 청년 박영남에게 끝내 고통만 안겨준 현실이되었다.
조국에서의 파람만장한 삶을 뒤로하고 나성(LA)땅을 밟은 것은 그의 나이 24세 때이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생활이 올해로 47년째다. 말이 47년이지 행간에 배어든 희로애락은 조국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자유의 땅에서 얻은 자유는 달콤했지만, 가장의 도리는 벗을 수 없는 무게였기 때문이다. 가장에게는 미국땅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의 여정은  LA에서 오클라호마로 그리고 달라스로 이어진다. 그때가 ‘남청여봉’의 시기다. 그도 봉제업으로 기반을 다진 달라스 이민 1세대이다.
달라스에 안착하고부터 그의 행보는 바빠지고 넓어진다. 한인사회의 리더로 활동하며 주류사회와 연결하는 중책도 맡는다. 그리고 2000년 5월 6일에는 한인 최초로 갈랜드 시의원에 출사표를 던진다. 성과의 문제가 아니라 도전이 중요한 것이다. 그의 노력 덕분에 정치적 신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가 한인사회와 주류사회에서 한 일들을 이루말 할  수 없이 많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모두가 자기 배를 불리기에 혈안이 되는데, 그는 아니었다. 국립군의 DNA를 가진 후손답게 한인사회를 위해 두 발 벗고 헌신했고, 귀하디 귀한 사료 또한 남겨주는 업적을 이루었다.
그가 남긴 자서전은 가족사의 등불 역할도 하지만, 한인사회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미천한 인간이 동물 중에 왕인 것은, 경험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사료와 각종 경험은 뒤를 밟는 사람에게  발자취가 분명하다. 4.19의 공로로 건국 포장을 받은 것보다, 한인사회의 웃 어른으로 자서전을 남긴 업적이 더 창대하고 값진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생을 위로 할 수 없지만, 그가 심혈을 쏟아 적어온 행간을 끝까지 읽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80여생을 조국과 동포를 위해 헌신한 노고에 큰 박수와 따뜻한 포옹을 안겨드리고 싶다. *

 

사진 글_ 김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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