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한 톨의 말씨

2018.07.06 09:13

ohmily 조회 수: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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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한 톨의 말씨

 

뾰족했던 마음이 구름처럼 몽글몽글 풀어졌습니다. 잠깐이었을 뿐인데, 오랜 시간 좋은 곳에 머물다 온 듯합니다. 틈만 나면 자꾸 풍선껌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물수제비가 날아와 마음속에서 잠방잠방 잠방거리며 놀고 있습니다. 여운이 참 오래갑니다.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짜릿한 전율은 없지만, 누룽지 숭늉처럼 여유롭고 따뜻하게 하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햇살 좋은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문 열자마자 뒤따라 들어온 손님이었습니다. 친구가 잘 못 알려줘 30분 전부터 나를 기다린 첫 손님이었지요. 그녀의 이름은 ‘수잔’입니다. 절친의 소개로 처음 왔노라며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이래저래 소개한 친구 얘기를 나누며 겨우 낯을 익히고 돌아가다가 나를 부릅니다. 정중하게 부릅니다. “미희, 이리와 봐요. 거울 좀 봐요.” 나는 거울에 뭐라도 묻어있나. 청소 안 한 게 눈에 띄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거울을 쳐다보았지요. 뭐 그리 깨끗하지는 않지만, 별다른 이상이 안 보여 왜 그러시냐고 물었지요. 예쁘답니다. “미희, 당신 얼굴을 봐요. 모르죠? 당신이 얼마나 예쁜지요?” 너무나. 진지하게 말씀을 하는 바람에 당황해하지도 못하고 얼떨결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다시 거울을 보았지요. 늦잠 자는 바람에 세수만 겨우 하고 나왔으니 여느 날보다, 그것도 더 몰골이 말이 아닌데 어디를 보고 예쁘다는 건지. 한참을 거울 앞에 서서 오랜만에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표정이 예뻤던 걸까. 처음 보는 사람이니 어색했을 텐데. 아니면 미소가 예뻤던 걸까. 민낯이니 미소 또한 억지 미소였겠지요. 아! 어쩜 내가 제일 싫어하는 튀어나온 광대뼈가 한몫한 건지도 모르죠. 게다가 각진 턱선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를 온종일 춤추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요리조리 뜯어보고 있으니 참으로 못 난 못생긴 얼굴입니다. “아버지! 미희라는 이름이 가당키나 합니까?” 이런 얼굴로 그래도 예쁜 줄 알고 사람들 속에 끼어 살았던 거네요. 아무리 봐도 어디 한 군데 예쁜 구석이 없습니다. 염색할 때가 되어 희끗희끗한 흰머리에 더군다나 아침 일찍이니 퉁퉁 부은 처진 눈에 적당히 생긴 코, 이젠 제법 선명해진 팔자주름까지 누가 봐도 예쁜 거 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저 내 나이에 맞게 적당히 늙은 게 흔하디흔한 얼굴이라는 섭섭한 결론에 닿았지요. 거울에 비친 내 옆모습은 또 어떻고요. 구부정한 어깨와 등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거울 앞에 일부러 설 일도 별로 없는지라 잊고 있었던 내 옆모습. 삶의 무게에서 온 자세라고 생각하니 쓸쓸합니다. 세상 모든 중력이 내게만 머문 것 같아 서글퍼집니다. 아마 자존감마저 자꾸 주저앉으려 하는 그저 평범한 중년 여인이 안쓰러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오늘만큼은 특별한 하루를 시작하라고 특별한 말씨를 내 속 뜰에 심어 주고 싶었던 것이었지요.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라 예쁜 내 마음이 보였던 거라고 생각하니, 말씨가 싹이 뜨기 시작하는지 마음이 간질거립니다. 

 오래전 일이 생각납니다. 쇼핑몰에서였지요. 흔히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이 된 적 있었지요. “ Beautiful, So beautiful!” 하면서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어떤 여자가 갑자기 내게 모델을 제안한 적이 있었지요. 고가로 보이는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든, 조금 멋져 보이는 여자가 사진작가라며 명함까지 건네면서요. 삐쩍 마른 몸에 튀어나온 광대뼈와 각이 진 턱선이 매력이라나 뭐라나. 누드 제안만 아니었으면 한 번쯤 모델 노릇 해줄 수도 있었는데 아쉽긴 했었지요. 그때만 해도 30대였으니 그런대로 봐줄 만했겠지요. 단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매력적으로도 보이나 봅니다. 30년 동안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며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그 사진작가의 눈에는 묘한 분위기를 품은 매력으로 보였던 것이지요. 얼굴은 내 것이지만, 나보다 남들이 더 많이 봅니다. 이름도 그렇습니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에 목숨 걸고 악전고투 하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하기야, 아는 언니는 “당신, 예뻐요.”라는 말, 그 한마디에 태평양을 건너왔다지요. 미국이란 나라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영화에서 본 것처럼 파티만 하는 줄 알고 파티 드레스만 잔뜩 해왔다지요. 그때 그 말씨를 품고 태평양을 건너온 파티 드레스는 수십 년 동안 옷장에 그대로 걸려 있다지만, 사시사철 예쁜 꽃이랑 열매가 앞뜰이랑 뒤뜰에 가득하다지요. 이 나이가 되었어도 예쁘다니까 좋은 가 봅니다. 온종일 좋았습니다. 여러 번 거울 앞에 서 보기도 했습니다. 대충 맞이하던 손님들도 어느 결엔가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짤막하던 인사에 한마디를 더 붙었습니다. 예쁘다는 멋지다는 말을 더했습니다. 수잔 씨가 심어준 그 한 톨의 말씨가 즐거운 꽃을 피웠지요. 온종일 심어 놓은 내 말씨가 하루만이라도 온 동네에 환한 꽃을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툭툭 뱉어 놓아 무슨 말 씨를 심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한 톨의 말씨가 남의 속뜰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지요. 얼마나 큰 아픔의 뿌리가 자라게 되는지 모르지요. 얼마나 큰 그늘을 드리우게 되는지 모르지요. 반대로 한 톨의 말씨가 다른 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힘도 지녔답니다. “너 참 잘한다!”라는 칭찬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참 예쁘네요!” 같은 기분을 높이는 위안의 말도 있지요. 말은 그 사람의 실체입니다. 속이 비었으면 빈말이 나오고 위선으로 가득하다면 위선의 말이 나오겠지요.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이 배어있지요. 맛깔스러운 말도 좋지만, 진심 어린 한마디가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믿습니다.  *
 

사람들은 몸속에
꽃대 하나씩 지니고 있다지요

 

열두 가지 고운 색깔
눈길로 머금어
천 년이 가도 시들지 않는 꽃
피우기 위해서라지요

 

들숨마다 그 꽃술에 적셔
날숨마다 풍기는 그 향 
찾아오는 남루를 향해
꽃 이름 하나씩 나누어
풍찬노숙風餐露宿 넘기게 하는
손길 하나 되기 위해서라지요

 

김미희, (마음 꽃)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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