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바늘과 실

2018.07.20 09:10

ohmily 조회 수:96

바늘과실.jpg

 

[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바늘과 실

 

바늘귀에 실을 밀어 넙니다. 구부러진 바늘은 곁을 주지 않습니다. 토라지듯 자꾸 구부러진 방향으로 몸을 틉니다. 실랑이하는 게 귀찮아 한두 번 하다 않되면 다른 바늘을 찾으련만. 바늘도 손에 익은 것이 따로 있지요. 실 끝에 침을 바르고 바늘 쥔 손을 살짝 틀어 다시 시도합니다. 번번이 미끄러지듯 돌아서고 마는 바늘. 바늘을 째려봅니다. 한심한 사람 같으니. 그냥 던져버리고 말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하지만 나는 미련스럽게도 이놈이어야만 된다는 어이없는 고집에 또 지고 맙니다. 바늘도 사람처럼 생김새와 성질이 다 다르지요. 손에 잡히지도 않는 비드를 꿰매려면 살이 없고 늘씬한 이놈이 제격이니 어찌합니까. 끝내, 기어코 너를 꿰고 말리라. 어느 쪽으로든 방향이 10도만 비껴갔으면 그대로도 좋았을 텐데. 간신히 실을 밀어 넣고 실 끝을 묶고 있자니 사납게 드드드득 박아대던 찢어진 내 목소리가 귀를 꿰고 들어와 우울해집니다. 

 엊그제가 아버지 기일이었지요. 제사를 지내고 저녁상 앞에 둘러앉았습니다. 우리 막내가 집안에서 제일 어리니 그 위의 조카들은 거의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요. 둘째 오빠네 큰 조카만 작년에 결혼했고 나머지는 여자친구도 없다 하니 혼기 찬 조카들을 보고 답답해서 한마디 거들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보기 좋은 바늘만 몇 쌈 있으면 뭐 합니까. 바늘귀를 채울 실이 없으니 말입니다. 사내애들이 하나같이 나가 놀 줄도 모르고 그저 집밖에 모르니 어느 세월에 짝을 찾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에 “너희 모두 교회 나가라!” 했던 거지요. 교회가 여자 만나러 가는 곳이냐며 칠색팔색을 하는 아이들에게 질세라 “그럼 어디에서 여자를 만날 건데? 사람을 만나야 연애도 하지!” 하며 먹히지도 않는 연애론을 펼치려니 교회를 그런 식으로 매도하느냐 창피하게 그런 말을 어떻게 하느냐며 따지는 큰아이한테 화가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드드드득 박아댔던 것입니다. 무식한 어미를 처음 보기라도 한 양 이상한 눈초리로 투덜대는 아이에게 오만가지 색깔을 다 섞어 박아댔지요. 가만히 있으면 맘에 딱 드는 여자가 연애하자고 찾아올 줄 아느냐. 그러다가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 해보고 늙고 말 거라고요. 그만하라며 다독이는 남편에게 오히려 당신 닮아 그렇다는 둥 되지도 않는 말로 억지를 쓰며 대바늘로 시침질을 해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과 회포도 못 풀고 돌아온 게 아쉬워서 그런 거라기에는 우스꽝스러운 행패였지요. 

 아마 며칠 전에 다녀간 스티브라는 백인 청년이 생각나서 더 그랬을 겁니다. 사십 대 중반인 그는 인터내셔날 매칭 회사를 통해 베트남으로 선을 보러 간답니다. 한 여자만 보고 올 수 없어 열 명을 보기로 했다며 내심 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두 해 전인가도 태국으로 선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별 성과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한국 농촌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를 이곳에서 듣고 있자니 그냥 흘려버리고 말 일이 아니었지요. 사랑도 연애도 결혼도 철모를 때 해야 한다는 어른들 말이 맞나봅니다. 혼기를 놓치면 쉽지 않다고들 하니 은근히 걱정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연애 한 번 못하고 결혼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다녀간 노부부가 생각납니다. 가끔 들르면 내 손을 꼭 잡고 인사를 하는 분들이지요. Mr, Mrs 에드워드는 구순이 다 되어갑니다. 영감님은 열여덟 마나님은 열아홉에 만났다니 70년을 함께 살고 있지요. 몇 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한 마나님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들어오시더니 작년부터는 지팡이에 의존한 마나님을 위해 앞에서 뒤에서 문을 여닫으며 챙기느라 영감님은 더 분주해졌습니다. 가슴 뭉클하게 하는 그런 모습은 아름답고도 처연합니다.

 풋풋했던 신혼의 수줍음도 소낙비 같던 번개 같던 한창때의 열기도 설익었을 때의 떫음과 낙망도 지난 지 오래겠지요. 서로를 달뜨게도 하고 잘 헐게도 했을 눈빛은 식을 대로 식어 이젠 자신의 체온과 같은 편안한 온기로 남았겠지요. 가슴 울렁이게 하던 반듯하고 빛나던 몸은 기우뚱 한쪽으로 굽었습니다. 바람의 행적이라도 수 놓을 듯 달리던 때는 추억 속에나 남아 있겠지요. 바늘귀에서 실이라도 빠질 양 꼭 잡은 두 손과 달리 자꾸만 풀어지는 걸음. 허방이라도 만난 듯 주춤거리며 보폭을 조정합니다. 한 세기를 살아오면서 서로에게 질질 끌려 우그러진 날도 있었겠지요. 너무 당겨 끊어질 뻔했을 때도 있었겠지요. 서로를 찌르다가 또 서로를 꿰매주면서 온 시간을 들여 붉은 노을로 나란히 서 있습니다. 

 겨우 거동만 가능한 노부부는 언제나 함께입니다. 영감님의 풍채를 보아서는 젊었을 때 마나님 속깨나 뒤집어 놓았을 법도 하지요. 가끔 흘기는 눈으로 던지는 마나님의 통박에도 쩔쩔매며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습니다. 혼인서약과 함께 바늘과 실이 되어 오늘까지 한 땀 한 땀 인생 위에 수를 놓으며 달려온 그들의 삶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릅니다. 어느 날 한쪽이 먼저 기울겠지요. 그럼 모든 게 멈추겠지요. 활동할 수 있는 순간까지가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손잡고 있는 그 시간이 길었으면 하고 안녕을 빌어 봅니다. 

 구부러진 바늘이 지나간 자리에는 별들이 떴습니다. 반짝반짝!
 

그들은 지금 막
가게 문을 닫고
석양의 긴 그림자를 끌며
길을 나서고 있다.

 

구부러진 바늘엔
무명실 한 가닥 길게 꿰어져 있고
길게 실을 꿰면 멀리 시집간다고 했지?
아내는 금방 노안에 붉은 연지를 번져내며
멀리 장가온 게 부담스런가 보다고
실눈을 감친다.

 

발자국은 여전히
같은 보폭으로 놓는 자수刺繡
초야의 수줍음도
신혼의 단꿈도
번개 같던 한여름의 열기도
설익은 떫음도
한 땀 한 땀으로 엮어내는
장도壯途의 행적

 

때로는 찔려도
자신의 체온과 같은 온기로
손깍지를 풀지 않고
길을 간다
둘이서.

 

 김미희, (바늘과 실)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B064.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