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리틀 포레스트’

2018.08.17 09:17

ohmily 조회 수: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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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리틀 포레스트’

 

“미희! 미스터 썬샤인이 끝난 거 같아.” 얼마나 심각한 표정이었는지 낮에 만났던 브렌다 씨가 생각나 웃음이 납니다. 한국 드라마에 빠진 동양사람들이야 오래전부터 종종 봐왔지만, 팔십을 바라보는 유대인인 브렌다 씨는 정말 의외였습니다. 늘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별로 말이 없는 분이라 더욱 그랬지요. 한국 드라마며 영화에 빠졌노라고 신바람 가득한 목소리로 자랑한 게 두어 달 전 일인데 넷플릭스에 올라온 것들은 거의 다 보았답니다. 물론 문화적인 큰 차이는 있지만, 소재와 재미있는 서사에 놀랐다며 칭찬에 칭찬을 거듭했습니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주인공 아니 제작자라도 되는 양 덩달아 신이 나지요.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요즘 브렌다 씨가 딱 그렇습니다. 미스터 썬샤인이 끝난 거 같다며 우울해하던 표정은 애지중지하던 양배추 인형이라도 잃어버린 아이 같았습니다. 미스터 썬샤인이야 요즘 제일 핫한 블록버스터급 드라마로 나도 챙겨보고 있는지라, 아니라고 아직 더 남았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왜 내 가슴이 뛰고 뿌듯함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미스터 쵸이의 왕 팬이 된 브렌다 씨에게 ‘내부자들’(이병헌 주연)을 소개해 드렸더니 이것이라면 남편도 좋아할 것 같다고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갔지요. 아마 지금쯤 영감님과 나란히 그들만의 작은 숲에 들었겠지요.

 

어릴 적 나의 ‘작은 숲’은 모기장 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잠든 밤이면 대청마루에 쳐 놓은 모기장 속에서 홑이불 덮고 보던 명화극장은 잊히지 않는 멋진 추억입니다. ‘쉘부르의 우산, 사운드 오브 뮤직, 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을 보며 사랑을 알게 되었지요.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훌쩍이며 가슴 졸이다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나를 숨 쉬게 하는 작은 숲이었지만, 요즘 나의 리틀 포레스트는 우리 집 동쪽 끝에 있는 서재가 되었습니다. 많지 않은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고 화려했던 날들을 접고 풀냄새 하나로 수렴된 마른 꽃들이 있습니다. 적당하게 푹신한 의자가 있어 지친 몸과 마음을 조건 없이 받아 주지요. 그곳에 가면 양수 속에 든 것처럼 고요해집니다. 지나온 삶의 지문이 묻어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 무엇보다도 엷게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밀린 드라마를 볼 때는 나만의 세상입니다. 

 

 ‘리틀 포레스트’ 제목이 예뻐서 그리고 배우 김태리가 예뻐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병든 아빠의 요양 때문에 혜원은 네 살 때 엄마 아빠와 함께 아빠의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던 중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냅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도 그곳을 떠나지 않는 엄마를 혜원은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수능 시험을 치고 온 혜원은 “엄마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타이밍이야! 라고 씐 편지 한 장과 엄마의 가출을 만납니다. 대학 진학으로 자연스레 출가하리란 예원의 계획은 엄마의 가출로 인해 수포가 되면서 혼자만의 도시 생활이 시작됩니다. 

 

메마르고 허기진 인스턴트들과 콘크리트 생활에 지친 혜원은 하얀 겨울에 시골집을 찾아갑니다. “왜 왔냐?”라고 묻는 고향을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단짝 친구 은숙, “배고파서!”라고 대답하는 혜원, 그리고 남이 결정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도시 생활을 버리고 농사가 멋진 직업이라는 해답을 갖고 내려온 재하의 아주 특별한 사계절 이야기지요. 예측불허, 지루하지 않은 시골 생활은 농사를 지은 것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여유로운 자연과 어우러집니다. 직접 빚은 막걸리를 앞에 두고 겨울밤 최고의 안주는 알싸한 추위와 같이 마시는 사람이라며 누룩처럼 어른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는 세 사람. 

 

“신기해, 저렇게 던져놔도 내년에 토마토가 열더라.” 먹던 꽁다리처럼 던지던 엄마의 말처럼 발신인도 없이 날아든 편지 속에는 미처 알려주지 못한 엄마의 감자빵 만드는 법이 적혀 있지요. 한데서 햇빛을 듬뿍 받고 자란 완숙된 상태에서 딴 토마토여야만 한다는 걸, 그리고 엄마의 그 말은 “보고 싶다.” 였다는 걸 알게 되지요. 단 며칠만 있겠다던 혜원은 헝클어진 기분을 단번에 바꿔주던 마법사 같던 엄마를 떠올립니다. 엄마표 크렘브륄레를 만들어 아카시아 꽃을 튀기듯 우정을 나누고 근심처럼 올라오는 잡풀과 시름하며 여름을 보냅니다. 

 

단밤에 단맛을 더해 삼키는 것은 가을이 익어가는 것이고 곶감이 맛있어졌다는 것은 겨울이 깊어졌다는 것이라지요. 이렇게 겨울이 깊어갈 즈음 엄마의 작은 숲은 자연과 요리와 혜원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혜원을 이곳에 심고 뿌리내리게 하고 싶었던 엄마, 그래서 아빠도 없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던 엄마.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빛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 믿어.” 혜원은 아주 심기를 준비하기 위해 양파처럼 도시로 갑니다. 그리고 봄, 더는 옮겨 심지 않기 위해 돌아옵니다. 


 ‘생’이라는 단어가 단어 중의 왕이라죠. 아마 이 단어 속에는 모험과 미래가 들어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부터의 생은 평범하고 조금 달라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특별하지 않을까요. 돌아오는 타이밍에는 사람들도 마른 꽃들처럼 사람 냄새 하나로 수렴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숨을 쉬고 있는 책들과 눈을 맞춰봅니다.

 

1
 꽃잎 하나에서 다른 꽃잎 하나로 번지는 공기 방울들이 모두 붉은 내음이다 내가 너에게 주는 입술도 붉은빛이다 그 붉은 빛으로 가슴은 뛰는 것이다

 

2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지 않아도
문이 열리네
보이지 않아서
자주 보네
보여서
걷던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네

 

너를 잘 아는 거 같아서
뒤꿈치 들린 달뜬 문장, 마치
완성된 운명 같아서
코끝을 대다가 멋쩍어져서
마음이 자꾸 어려지네
 
발소리도 없이
남향보다 더 남향으로 데려가
네가 나를 꽉 잡고 있는 거 같아서
이렇게라면 
북향보다 더 북향도 갈 수 있을 거 같아서
내 한날의 청춘이 입술 열고 흥얼거리네

 

평범한 걸 부러워하는 거
이제 슬프지 않네
보이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너
나는, 나는 매일이 봄이네

 

김미희, (향) 전문

 

김미희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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