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시인이 영혼을 위한 세탁소]

내 ‘그늘’이 되어버린 언니

 

 오늘따라 의자가 유난히 삐걱거려 신경이 쓰인다 했더니 재봉틀마저 오락가락합니다. 오래전부터 모터를 갈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럭저럭 달래가며 오늘까지 왔지요. 다른 재봉틀을 사용하면 되는데 하루 같이 25년을 기꺼이 나의 분신이 되어 준 내 것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어 모터를 새것으로 갈아 쓰기로 했습니다. 여기저기 못질을 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의자도 날씨가 찌뿌둥하다는 걸 알기라도 한 모양입니다. 처음 이 가게를 인수하면서 만나게 된 의자. 좁은 가게에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버릴 수가 없었지요. 한 세기는 거뜬히 받치고 온 듯 넉넉해 보이는 품이 왠지 보자마자 정이 들었습니다. 이젠 한 번 호되게 내동댕이치기라도 한다면 금세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모습이 꼭 요즘의 내 모습 같아 안쓰러워 당분간 재봉틀과 의자를 다른 것으로 바꿔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우울한 봄이었습니다. 2월에 갑자기 엄마를 보내고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함께 일했던 언니가 믿을 수 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언니가 사용하던 재봉틀 앞에 앉았습니다. 언니와 울고 웃던, 한숨까지 다 받아주고 온갖 상처들을 다 기워주던 그 재봉틀. 삶의 무게를 묵묵히 담아내던 그 의자에 앉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 자리를 치우지 않았지요. 여기저기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앞 벽에 걸려있는 작은 수첩에는 에어컨과 간판 수리한 날, 재봉틀 고친 날들이 전화번호와 함께 깨알같이 적혀 있습니다.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빼곡합니다. 압정으로 눌러 놓은 손바닥만 한 2016년 6월 달력에는 첫째 주와 셋째 주 토요일에 체크를 해 놓았습니다. 아마 2주에 한 번씩 받던 월급날인가 봅니다. 서랍을 열어보니 먹다 남은 홍삼 캔디며 잡다한 부속들이 그대로 있습니다. 은행에서 받아온 입금 영수증도 있고 한국에서 언니가 보내준 택배 영수증도 접힌 채 있습니다. 이젠 유품이 되어버린 언니의 물건들을 모아봅니다. 먹다 놓고 간 비타민 병들. 일할 때 가끔 걸치던 검은색 조끼. 좋아했던 반작이 슬리퍼. 커다란 장미꽃이 수 놓인 방석. 이제나저제나 들려서 챙겨가려나 하고 있던 자리에 그대로 두었는데 이젠 정리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언니가 갑자기 문자로 사직을 알려 온 지 일 년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하루 10시간 일주일에 6일, 8년이란 세월을 함께 보냈지요. 그 긴 시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겪으며 기뻐해 주고 위로하며 함께했습니다. 그 시간 만큼이나 언니를 마음에서 내려놓는데도 긴 시간이 필요했지요. 처음에는 가게 문 여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뛰었습니다. 어느 날 밤 언니가 길 건너 주유소에 들렀다가 늦게까지 우리 가게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파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친구로부터 전해 듣고 나도 한참을 울먹였지요. 그 뒤로 혹 늦은 밤까지 일하고 있으면 찾아올까 싶어 일부러 늦게까지 가게에 있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이젠 너무 늦어버렸지만 그렇게 그리운 날이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버리면 딱 좋을 물건들을 들고 와 그것들과의 관계와 추억들을 늘어놓는 손님들. 버릴 수 없음을 강조하며 수선을 부탁하는 사람들을 보며 하찮은 추억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얼마 전에 마지막으로 손수 만든 샌드위치를 싸 들고 와 했던 말만 기억하렵니다. 진심이었다고 생각하렵니다. “홍이 엄마, 하루 한 시간씩 일 년 내내 와서 일을 해줘도 홍이 엄마 고마움 다 못 갚아.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나가서 보니 알겠어. 홍이 엄마가 나한테 얼마나 진솔했는지…….”나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함께 있을 때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살았으니 되었다고요. 이젠 좋은 가게 만나서 잘 살면 된다고요. 정말 잘 살기를 바랐습니다. 사랑해주는 사람이랑 결혼도 했으니 행복해질 일밖에 없다고요. 

 

‘나는 어떤 나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요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난 후부터입니다. 저자 폴은 핑크빛 앞날이 보장된 서른여섯 살의 젊은 외과 의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레지던트 1년을 남기고 암 선고를 받게 됩니다. 의사이자 환자로 마지막 22개월간의 투병 생활을 하며 그린 삶과 죽음에 대한 성실한 철학이 실려있었습니다. 끝까지 정체성을 잃지 않고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갑작스럽게 가까운 사람들을 보내고 나니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나로 살아야 할 것인지 말입니다. 

 

그녀가 떠났어도

그녀는 남아있다

 

내어준 마음 거둘 줄 몰라

삐걱삐걱 속울음만 삼키더니

앉은 채 그늘이 되어버린

기다림밖에 모르는 여자

 

굽어 가던 등은

기댈 줄 몰라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고

가지 부러진 자리에 굳은살 박인 듯

진물 흐르던 세월 둘둘 말아 등에 지고

심장으로 흐르던 줄기를 말리던 탓이었다고

그러다가 그녀는 멀어져 갔고

또한 그녀는 남은 거라고

 

재봉틀 소리에 묻혀들던 한숨들

바람 되어 떠난 지 오래지만

마른 다리로 버티는 의지는 아직

들려 올 물소리를 예감하는 것이라고

 

잎을 피울 줄 모르는 마른 물푸레나무

한 번도 열매를 맺은 적 없어

기다림에 절은 채

그늘 되어 앉아 있는 여자가 있다

 

김미희, (의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