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미희 수필 간을 맞추다

2018.03.02 09:54

KTN_WEB 조회 수:132

  [ 수필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간을 맞추다

 

“엄마, 언제 와?”
“일 마치고 바로 갈게.”
“응, 알았어. 조심해서 와!”
“알았어~. 오늘은 뭐 먹어?”

 

오후 6시가 된 것입니다. 내 귀가 시간을 물어오는 전화입니다. 십수 년 전부터 시작되었지요. 처음에는 엄마였다가 큰 아이였다가 지난가을부터는 막내로 이어졌습니다. 뭐 딱히 다를 것도 없는 남들 다하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워낙 들쑥날쑥한 퇴근 시간 때문이었지요. 마지막은 꼭 “오늘은 뭐 먹어?”라는 내 물음으로 끝이 납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대화입니다. 내 귀가 시간에 맞춰 상차림을 하시던 할머니의 생활 교육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봄의 전령은 봄비입니다. 아쉽게도 해가 겨우 하루 반짝하고 말았습니다. 지난겨울은 추운 날이 많았지요. 봄을 차리기 위해 하늘은 아직도 간을 맞추는 중입니다. 웅크린 대지의 촉수를 세우고, 얼었던 나무들의 세포를 깨우기에 지난주 내내 내린 비로는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오후부터 또 비가 내렸습니다. 그 비 꽁무니를 따라온 안개가 온 마을을 품고 낮게 깔려 있습니다. 안개가 대지의 응답인가 봅니다. 간신히 집까지 왔습니다. 안개 속을 달리는데 꼭 낯선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아프려나 봅니다. 기온이 내려간 건 아닌데 온몸이 덜덜 떨립니다. 

 

문을 열고 반겨주는 우리 막내. 된장국 끓이는 중이라며 젖은 손을 벌려 안아줍니다. “엄마, 오늘은 어땠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물어오는 말이지만,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딱 좋은 인사입니다. 손을 씻고 부엌으로 달려드는 나를 끌어냅니다. 서툰 칼질이 안쓰럽지만, 아이의 도마 소리는 정겹습니다. 따뜻하게 씻고 몸을 녹이라며 온풍기를 들고 앞장서서 화장실로 갑니다. 이것 또한 할머니의 이상한 사랑 방식이었습니다. 늘 개운하게 씻은 후 깨끗한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게 했으니까요.

 

오래 전부터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저녁 때가 되면 누구라도 집에 있는 사람이 밥을 합니다. 일 마치고 들어오면 우르르 부엌으로 달려들어 모두가 거듭니다. 씻고 자르고 볶고 익히고, 함께 음식을 합니다. 원래 간을 잘 못 보지만, 언제부턴가 음식 간 보는 일에서 떠났습니다. 누구라도 맡은 사람이 마무리를 합니다. 물론 양념에 대해서는 내가 훈수를 둡니다. 가령 소금이냐 간장이냐, 고추장이냐 된장이냐, 통깨냐 깨소금이냐 같은 거 말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우리 가족은 저마다 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름 막내가 자신 있게 하는 것은 김치찌개와 된장국입니다. 아마 미역국도 제법 끓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편과 큰 아이 생일에 미역국 끓이는 것을 막내가 유심히 챙겨보며 도왔으니까요. 남녀노소 누구라도 잘하는 음식 몇 가지는 있어야 세상 살기 편하지요. 남에게 기대고 얹혀살지 않으려면 기본적인 식생활은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같이 안개가 자욱한 날. 그래서 앞이 안 보여 울고 싶은 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많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간을 보고 간을 맞출 줄 몰라서였습니다. 하기야 음식 간 보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산다는 것이 간을 보고 간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좀처럼 마음만은 간을 볼 수 없어 헛헛했던 날들. 간을 맞출 수 없는 날에 길드느라 졸아든 가슴을 헛물 들이키며 달래던 수많은 날은 또 어쩌고요. 그러다가 무뎌지고 왕소금이 되어 짠지 단지 구별도 못 하게 되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간을 볼 줄 몰랐을 때는 속이 훤히 보이는 웃음이면 되었지요. 지우개로 지우고 또 지웠다 쓴 PS 한 줄이면 땡이었지요. 아이들 장가가기 전에 구글 창을 열고 물 타는 법이라도 배워서 싱거워져야 하겠습니다.

 

간, 나무는 간을 보지 않습니다. 똥물을 빨아올려도 연두색 떡잎을 밀어 올리고 꽃을 피웁니다. 흙탕물 속에서도 본연의 색은 변하지 않습니다. 뒷간 옆에서 자란 앵두가 더 붉습니다. 사람만이 간을 봅니다. 간 보는 거로는 부족해 볶고 굽고 튀깁니다. 갈고 난도질까지 합니다. 간을 보는 것은 음식에서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오늘은 어땠어?” 같은 말 한마디 나누며 간을 맞추고 살면 좋겠습니다.

 

막내가 끓인 된장국은 일품입니다. 코끝이 찡합니다. 언제 배웠을까요. 멸치다시 국물에 된장을 풀었을 뿐인데 조촐하고 담백합니다. 적당히 부풀었다 가라앉은 두부며 적당히 씹히는 채소들, 살짝 느껴지는 매운 향까지. 엄마, 그러니까 애들 할머니의 손맛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바로 그 맛입니다. 간을 맞추는 일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자라면서 생활 속에서 보고 먹고 느낀, 그 익숙함으로 자연스레 몸이 반응을 하는가 봅니다. 간을 제대로 맞추는 것을 보니 우리 막내도 철이 들었나 봅니다. 보기 좋은 음식이 아닌 평생을 먹어도 그리운, 된장국 같은 담백하고 편안한 어른을 예감해 봅니다. 된장국 한 그릇에 마냥 행복한 밤입니다. *

 

속 보이는 웃음 한 줄에

고독이 묻어있다는 사실을 몰라

지우개로 지웠다가 다시 써 보낸 PS 한 줄도

아무렇게나 둘둘 말은 김밥 한 줄에

배부르던 때의 그 진실이 있음을 몰라

끓이고 볶고 양념 쳐

제 맘에 드는 맛으로 간간해지면

그 사람 진짜 맛 어찌 알 수 있을까.

 

허기진 날들만 혀끝에 묻어나고

더 이상 간 볼 수 없는 나날에 길들고 말아

계속 들이키는 헛물로

사리가 용해되는 설움이거나

그 눈물로 더욱 몸서리치도록 짜진

왕소금이 되어가는 것이라면

차라리 구글 창이라도 열어 놓고

운수 떼기라도 해

제대로 된 그 맛 만날지 모른다며

 PS 한 줄 덧붙인다.

 

김미희, (간을 맞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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