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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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시온 산에 잠든 친구의 아들

 

봄바람이 눈발처럼 차다. 코트 깃을 꼭 여미고 고개를 숙이고 걸어야하니 시속 25마일은 됨직한 강풍이다. 이 지독한 바람들은 어디서 몰려왔을까? 초여름인 듯 싶었는데 겨울처럼 매몰찬 바람이부니 계절이 마지막 문턱을 넘나보다. 덕우드트리에 활짝 핀 십자 모양의 흰 꽃이 태풍에 쫓겨 모여든 나비들처럼 온몸으로 버티는 모양이 안쓰럽다. 차를 주차시키고 Zion MT.(시온산) 장지로 가는 길은 흰색 클로버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흰꽃이 물결처럼 바람 따라 흐르는데 듬성듬성 섞인 민들레꽃이 누웠다 섰다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것이 대견하다. 

유대인 친구, 아나의 삶에도 겨울 토네이도 같은 바람이 몰아쳤다. 작년 말 형제 같던 친구가 암으로 떠났고 지난달엔 뉴욕친구의 사십대 아들 장례식에 다녀왔는데 딸이 결혼 3년 만에 이혼하게 됐다고 했다. 그녀의 계속된 상실을 함께 아파하며 위로한지 겨우 한 주 만에 갑자기 아들을 잃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순간 머리가 텅 비는 듯했다. 이 땅을 떠나기에는 아까운 나이 40초반에 심장대동맥 파열로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혼자서 조용히 떠났다고 했다. 흙에서 왔으니 빨리 흙으로 보내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은 가능한 한 24시간 내에 장례식을 하는데, 아내를 기다리느라 전통을 깨고 목요일까지 미루었다고 했다. 고국인 중국 방문 중에 남편의 부고를 들었으니 그녀의 귀국길이 얼마나 황망했을까. 
Zion MT.(시온산) 표석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야트막한 텐트가 쳐있고, 파낸 흙을 덮은 초록 덥게 앞으로 매장용 운구가 놓여있다. 그 앞으로 등받이에 R자가 새겨진 짙푸른 접이식 의자가 7개씩 대여섯 줄 있을 뿐이라 많은 조문객들 대부분이 서 있어야했다. 
시간이 되자 검은 양복에 중절모, 길게 기른 수염의 랍비 두 분이 오셨다. 여전히 몰아치는 바람에 식을 진행하는 랍비는 검은 모자를 몇 번이나 눌러쓰고 책갈피의 종이가 날아가기도 했다. 남자들이 쓴 검은 키파와 여자들의 검은 망사리본도 머리핀으로 고정했는데, 그것마저도 날려버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지독한 바람이 마음을 마구 헤집는다. 
관이 차로 도착하자 친구들이 운구해서 매장용 운구 위에 놓고 덮은 채로 두었다. 유대교도 극정통파, 개혁파, 진보파, 보수파, 신정통파 등이 있는데 친구가족은 정통파 중에도 유대교 신비주의라고 하는 카발라에 속해있다. 영정사진도 꽃도 없이 랍비의 카디쉬(Kaddish)라는 기도로 시작되었다. 영어를 주로, 간혹 히브리어로 진행됐는데, 시편 23편의 말씀으로 위로와 평안을 전했다. 고인은 누구에게도 “노 프러브럼”이었기에 별명이 “미스터 노 프러브럼”에 “피스맨”이었다고 했다. “토요일 안식 끝난 시간에 집에서 혼자 조용히 떠난 그의 짧은 생애도 목적이 있었고, 이제 그에게 맡겨진 모든 일마치고 그는 ‘홀리플레이스’에 있는데 메시야 오시는 날 함께 오면 키스하고 허그하며 만날 것”이라고 말씀을 전한다.
키스한다는 랍비의 말씀에 아나와의 첫 키스 인사가 생각났다. 여자 손님들과의 미국식 허그도 익숙하지 않은데 끌어안고는 뺨과 이마에 뽀뽀를 하는 게 아닌가? 유대인들 인사법이라고 알고 있었고 또 아주 고맙다는 표현이었는데 얼마나 불편하고 어색했던지. 이제는 나도 허그하며 그녀의 뺨에 내 뺨을 대는 인사를 한다. 정겨운 인사법이니 랍비의 말에 많은 위로가 될 듯하다. 또 10살 어린 여동생이 늘 보호막이 되어주었던 오빠에게 보내는 감사편지를 눈물로 읽었다. 20년 넘게 알고 지냈기에 친구 아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하관 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작은 비닐에 든 홀리랜드-이스라엘 흙을 랍비와 유족들이 뿌린 후 삽으로 흙을 떠서 관을 덮기 시작했다. 누구든 참여하는 것이 예의라고 했다. 유족들은 오늘 저녁부터 바닥에 앉아서 하는 sitting Shib’a(쉬브아), ‘7일간의 애도’를 시작한다는 광고 후 남과 여로 나누어 두 줄로 선 사이를 유족들이 지나가며 인사를 하는 것으로 장례식을 마쳤다. 쉬브아 동안은 집안의 모든 거울을 천으로 가리고 샤워, 면도, 머리손질, 향수를 금한다고 한다. 7일 후 장지에 생화를 가져가고 30일간 직계가족은 결혼식, 성년식, 음악 있는 모임을 피한다. 특히 자녀는 일 년 간 그런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주일 후 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위로카드에 돈을 넣어주었지만 점심이라도 함께 해야겠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을 몰아낼 때 4살이었던 아들. 로마 쉘터에서 일 년을 지내면서 고생시켰던 때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그 어미의 마음을 어찌 위로해야 할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시편에서의 기도가 생각났다.  *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3, 4)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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