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소설]

김정숙 수필 잎이 죽어야 피는 꽃

2018.08.31 09:07

ohmily 조회 수: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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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산책 ] 시인의 작은 窓

 

잎이 죽어야 피는 꽃
 

 

애절한 사랑의 꽃 석산(꽃무릇 Red Spider Lily)은 잎이 죽은 후에야 피는 꽃. 4~5월에 서서히 잎이 지기 시작해서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졌던 자리에 꽃대가 쑤욱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시애틀에 다녀왔더니 활짝 피어 환하게 맞아준다. 모든 초목이 푸르른 삶을 시작하고 아름다운 꽃의 계절에 죽어가는 잎의 안타까움이 있기에 오늘 화려하게 붉은 꽃이 더 소중하다.
 
 요한복음 16장은 제자들과 거의 3년을 함께 보내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에서 하신 말씀의 마지막 부분이다. 제자들이 앞으로 당할 고난과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과 성령께서 오셔서 하실 일을 말씀하신다. 늘 함께하시던 예수님이 떠나신 후 고난 당하고 출교 당하며 심지어 죽임을 당하겠다는 말씀에 두렵고 근심하는 제자들. 그러나 보혜사성령이 오셔서 주시는 기쁨을 해산의 고통에 비유하셨고, 나에게는 가장 쉽게 다가왔다. 실제로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체험한 후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행 5:41). 

 

 죽을 것 같은 해산의 고통 때문에 요즘은 무통분만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아플 만큼은 아파야하는 출산. 지켜보는 이들 또한 안타까움에 함께 힘을 쓰고 애를 쓰고 고통에 동참하게 된다, 율전 전철역 근처의 빌딩 반지하에 예배당을 꾸미고 방을 막아 살며 목회 할 때 일이다. 그 건물 이층 앞쪽은 상가였고 뒤쪽은 입구에 부엌 달린 방이 하나씩, 벌집같이 작은 월세방이 있었다. 그 곳은 입주자가 자주 바뀌지만 조용한 편이었다. 남편은 월요일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면 토요일 새벽기도까지 마치고야 돌아오기에 젊은 집사님들 몇 분과 밤낮을 거의 기도로 살 때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살았다. 

 

 어느 날 한밤중, 누가 지하 예배당 샷시문을 두드린다. 곤혹스런 표정의 젊은이가 자기 손을 마구 비벼대며 아내가 산통중인데 도와 달란다. 난감했다. 피 보는 게 싫어 물리치료사를 했기에 경험이 전혀 없는데 어쩌나...  급한 대로 가위와 면실, 거즈와 붕대, 알코올 등을 챙겨들고 박집사님과 갔다. 초산이라고 걱정이 가득한 어머니와 심한 산통으로 기진해 늘어진 산모. 이미 문이 열려서 태아의 검은 머리가 보인다. 찬양과 기도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수축시간을 쟀다. 남편과 엄마의 손을 잡은 해산모의 입에 수건을 물려주고 힘이 주어질 때 길게 힘껏 밀어내듯 힘을 주는 것이 아기를 돕는 거라고 일렀다. 남편과 엄마의 힘써! 좀더! 소리와 우리의 기도인 주님! 주여! 가 합창으로 어우러질 때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엄~마~!와 주~님~! 의 크라이막스 코러스로 이 세상의 가장 귀한 새 생명을 내 손에 받는 축복을 받았다. 건강한 남자아기의 울음소리. 아이고 감사해라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다들 감사로 눈시울이 젖었다. 짧은 해산지식에 주워들은 상식, 두 아이를 낳은 경험과 기도로 무사히 아기를 받았다. 저절로 축복기도를 하게 되었다. 따듯한 물에 적신 가재수건으로 얼굴과 머리에 묻은 것을 대충 닦아서 폭 싸놓고 중지 세 마디 길이의 탯줄과 한마디를 더한 길이의 두 군데를 면실로 챙챙 묶고 소독해놓은 가위로 탯줄을 잘랐다. 아주 질기고 단단했다. 처음 경험이지만 경이로웠다. 이렇게 튼튼한 줄에 연결되어 자란 귀한 생명. 떨렸지만 탯줄을 조심스레 아기 배에 모아서 거즈를 대고 붕대로 살짝 감은 후 할머니께 안겨드렸다.  산모가 다시 배가 아프다며 겁을 내기에 아기 방석이었던 태반을 낳을 거니 아기 낳듯 힘을 주라 했더니 쉽게 쑥 낳았다. 태반은 어머니가 깨끗한 곳에 잘 두었다가 삼일째 되는 삼날에 정갈하게 정성껏 태우겠다고 하신다. 산모 첫국밥을 굴을 넣고 끓이셨다. 수고 많았다며 미역국을 먹고 가라는데 정중하게 사양하고 교회에 오니 새벽이었다. 교회에서 기도하며 함께 애쓰던 집사님들과 기쁜 소식을 나누었다. 그 후 아무 소식도 없었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40년 전 아기는 지금 어찌 됐을까? 

 

 그 후 목사의 아내로서 전문직을 포기한 덕? 에 겪어야 했던 재정적 어려움. “하나님 물과 밥과 간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다섯 살 큰 애의 기도를 들은 여전도사님은 반찬 대여섯 가지를 만들어 먹는 언니에게 충고 아닌 권고를 했단다. 당시엔 일주일에 한번 유아원의 도시락에 넣을 감자 몇 근 어치 살 여유밖에는 없었다. 남편은 강원도 마니산으로 40일 금식을 떠나고. 그 때는 어렵고 힘든 것을 불평할 곳도 없으니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일로 보냈던 영적으로 가장 행복한 때였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21~22)   *

 

김정숙 사모
시인 / 달라스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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